박근혜 대통령은 8일 총리 국회 추천 요청을 위해 국회를 찾았지만, 내심 야당 대표들도 국회의장 면담자리에 나와주길 기대했다. 자연스럽게 야당 반발이 누그러지고, 국회 추천 총리로 상황이 일단락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 국회 도착 전부터 야당은 만나지 않겠다는 당 차원 결정을 속속 내놓았고 결국 대통령과 국회의장의 만남은 13분 만에 끝났다. 할 말만 하고 일어선 셈이다.
청와대는 영수회담을 열어 그나마 힘 빠진 정국주도권을 회복해보려 했으나 무산됐고 대통령이 직접 `총리선출 공`을 국회로 일단 넘겼다.
정국 해결에선 진일보한 것이지만 앞으로 길도 험난하긴 마찬가지다. 국회 총리 추천 과정에서 대통령이 총리에게 줄 `권한의 범위와 실제 실천 정도`가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야당은 이날 의원총회 등을 열어 박 대통령이 제시한 수습책에 대한 평가에 나섰다. 일단 박 대통령이 여야 합의로 임명된 총리가 내각을 통할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야당의 선결 조건 중 핵심 부분이 받아들여졌다는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나 “미세조정이 있겠지만 민주당이 내건 3대 선결 조건이 수용된 것으로 해석한다”고 밝혔다. 같은 당 김부겸 의원도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 2선 후퇴와 거국내각을 받아들인 것으로 판단한다”면서 “만시지탄이지만 대통령 결단을 인정한다”고 환영 입장을 나타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총리 지명 철회 △박 대통령의 2선 후퇴 및 국회 추천 총리 수용 △별도 특별검사제·국정조사 등을 요구했다.
박 대통령이 2선 후퇴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향후 총리 합의 절차와 권한 행사 범위 등을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제기됐다. 박 대통령이 국회에 국무총리 추천권을 넘기더라도, 청와대가 내정에 간섭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에 실질적 권한 이양, 2선 후퇴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당내 일각에선 냉소적 반응도 짙었다. 13분간 짧은 회동에 대통령 말씀이 세 문장에 불과했다는 데 대해 진정성을 의심했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은 변하지 않았다고 본다”며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 와서 진솔한 반성도 사과도 없었다. 90초 사과, 9분 재사과의 재판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총리 지명 철회와 함께 대통령 탈당을 선결과제로 함께 제시했던 국민의당은 여전히 박 대통령이 내각 통할 권한을 주겠다는 입장을 밝히려면 탈당이 전제돼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용호 국민의당 원내대변인은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 언급 없는 책임 총리 제안으로는 국민 분노가 수그러들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도 “박 대통령께서 하실 일은 말씀하시지 않고, 국회에 공을 던지고 시간을 벌겠다는 의도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의당은 계속해서 대통령 하야를 촉구했다. 국회를 방문한 박 대통령 앞에서 `하야` 피켓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한창민 정의당 대변인은 “어떤 정치적인 해법으로 모면하려는 방식이 아니라 즉각 하야를 선언하고 과도내각을 꾸려 안정되게 헌정을 정상화하는 게 안정적 해법”이라고 말했다.
여당은 이번 대통령의 국회 방문을 계기로 얽혀 있는 난국의 실타래가 풀리길 기대했다. 그리고 야당을 향해서도 적극적 협조를 부탁했다.
염동열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은 “대통령의 국회의장과의 대화가 막혀있는 정국에 물꼬를 트고, 국정위기를 타개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면서 “국회가 국민과 국가를 위해 국정공백 사태를 막고 국정정상화를 이뤄내야 한다. 야당이 정국 수습에 적극 나서 주셔야 한다”고 당부했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