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가 초박빙 양상으로 치닫고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따른 국정 공백 장기화 우려로 국내 금융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여기에 연내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과 인터넷전문은행 등 핀테크 시대가 도래하면서 내년의 한국 금융 산업도 격변기를 맞을 전망이다.
◇금융시장 뇌관, 가계부채 폭탄 `어쩌나`
우리나라 가계부채 증가세는 이미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그 발판이 된 것이 은행과 제2금융권의 무분별한 주택담보 대출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의 장기 추세 격차인 `신용 갭`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평가다. 실물경제 상황에 비해 과도하게 가계부채가 쌓이고 있다.
2011년 말 800조원대이던 우리나라 가계부채 규모는 현재 1300조원에 육박한다. 2011년 861조4000억원, 2012년 901조9000억원, 2013년 960조6000억원으로 증가한 데 이어 2014년에 1025조1000억원으로 1000조원을 돌파했다. 이후 지난해 1138조원으로 늘어난 뒤 올 2분기 기준 1257조원으로 급증했다. 5년 동안 무려 46% 늘어난 것이다.
전년 대비 가계부채 증가율도 2012년 5.2%에서 2013년과 2014년 각각 6.0%, 6.7%로 오르더니 지난해에는 2006년 11.8% 이후 역대 최고인 11.0%까지 치솟았다. 가계부채는 총량도 늘었지만 질도 나빠졌다.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2013년 160.7%에서 올해 6월 말 173.9%로 13.2%포인트(P)나 뛰어올랐다.
이는 금융권의 체질을 더욱 약화시키고, 내년엔 고스란히 부실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여기에 미국 기준금리 인상도 가계부채 부실화를 높일 위험 요인이다.
최근 정부는 은행에 금리 장사 자제를 당부했다. 내년까지 가계부채를 잡을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국내 금융사도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한국은행이 국내외 금융 전문가 7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6년 하반기 시스템적 리스크(Systemic risk)` 조사에서 70%가 `가계부채 문제`를 가장 먼저 꼽았다.
금융 전문가들은 “미국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과 유로존 위험 재부각 등 위험 요소로 인해 외국인의 자금 유출 등 대외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국내외 금융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외화 유동성 관리에 만전을 기해 자본 유출입 규제를 유연하게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13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가 버티는 이유는 저금리이기 때문”이라면서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국내 금리까지 오르면 부실 우려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고, 가계부채 연체율이 상승할 가능성이 짙다”고 우려했다.
◇환율 전쟁 대비해야
미국의 새 정부 출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등 큰 흐름의 변화가 예상되는 내년에는 환율 대책이 필요하다.
본지가 기관별 2017년 환율 전망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국내 금융기관들은 달러 약세의 가능성을 크게 봤다.
하나금융투자는 내년 달러-원 환율 전망치를 연평균 1130원으로 제시했다. 추세로 볼 때 원화 강세를 예상하지만 상반기의 변동성 확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분석이다. 신한금융투자는 완만한 달러 약세에 무게를 실었다. 내년 달러-원 환율 전망치는 평균 1,090.00원이며, 올해 말 레벨은 1,050.00원으로 예상했다.
신한금투는 “미국 달러화의 실효환율은 장기 평균에 비해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면서 “미국 경제는 3분기 연속 1% 안팎의 성장에 그치며, 달러 강세의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Fed가 금리를 인상하려면 달러 약세 반전, 유가 반등, 수출 개선 등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LG경제연구원 역시 내년 달러-원 환율을 연평균 1,130.00원으로 내다봤다. 내년에 원화가 소폭 절하될 것으로 보이지만 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과의 통화정책 격차, 금융 불안 국면에서의 달러 강세 가능성 등은 원화 약세 배경이 될 것으로 봤다. 이와 더불어 거시 건전성에 따른 외국인 투자 유입, 미국 대선 이후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은 원화 강세 요인으로 거론됐다.
이와 달리 해외 투자은행(IB)은 달러-원 환율 전망치를 여전히 높게 보고 있다.
올해 초 달러-원 환율 전망치를 1,300원대로 높게 본 모건스탠리는 내년 환율도 1,200원대로 예상했다. 모건스탠리는 내년 1분기 1,200.00원, 2분기 1,220.00원, 3분기 1,240.00원, 4분기 1,250.00원으로 각각 예상했다. 모건스탠리는 내년 한국 경제 상황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75bp의 금리 인하를 전망한 바 있다. 이후 2018년에는 방어형 재정완화(QE)에 들어갈 가능성도 열어 뒀다.
다국적 종합금융사 바클리도 달러-원 환율이 1,200원선에 근접할 것이라는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내년 1분기에는 1,200.00원, 2분기에는 1,190.00원, 3분기 1,180.00원, 4분기 1,170.00원을 전망치로 각각 제시한 상태다. 이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할 환율 대책에 정부와 금융권이 조속한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환율 인상에 베팅…자산배분전략 전면 수정
증권사는 금리 인상에 대비한 상품군 확보에 분주하다. 금리 인상은 미국 달러화 강세와 물가 상승 등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이미 저금리 시대 대표 투자 상품인 채권형 펀드에서는 9월부터 자금 유출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까지 채권형 펀드의 설정액은 107조원에 육박했다.
금융투자업계는 달러화 강세와 연동한 상품에 주목하고 있다. 이미 달러 표시 채권, 달러선물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 등에는 투자 자금이 몰리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달러화 예금 규모는 565억달러로, 지난해 말(472억달러)에 비해 약 20% 증가했을 정도다.
금융투자업계가 달러 표시 자산에 눈을 돌리는 것은 외국인 주식 시장 이탈 우려 때문이다. 지난달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미국 1년 국채금리가 0.25% 상승하면 3개월 후 국내 주식 투자 자금이 약 3조원 빠져나갈 것으로 분석했다. 금융투자업계가 최근 해외 부동산, 항공기 투자 등에 열을 올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금리 인상이 이뤄지면 한동안 주식시장 침체는 불 보듯 뻔하다”면서 “증권사도 채권 중심으로 보유하고 있던 자산을 하루 빨리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효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의 금리 인상 시 주식 시장을 통한 외국인 투자 자본의 유출이 예상된다”면서 “은행 부문을 제외한 주식 및 채권 투자자금 유출입 변동성을 완화할 수 있는 거시 정책 추가 건전성 수단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채널의 붕괴…핀테크 산업 본격화
전통의 은행, 증권, 카드사들이 내년에 중점을 두는 또 하나의 요인은 바로 `핀테크`다. 이미 세계 금융 시장 생태계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급격한 정보기술(IT) 발달과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고객들의 취향까지 감안한다면 오프라인 지점을 통해 고객을 만나고 영업 서비스를 해 온 기존 은행들은 조만간 개점휴업에 들어가야 한다. 지점을 둔 전통 방식의 은행은 2020년까지 35% 넘게 줄어들 전망이다.
금융에 IT가 접목되면서 `핀테크(Fintech)`가 주목받고 있다.
최근 한국도 간편결제 바람이 불면서 IT로 중무장한 글로벌 핀테크 기업들이 진출하고 있다. 핀테크는 엄밀히 말하면 통신이나 대금 지불 사업자 등과 연계한 융합 사업에서 출발한다. 전통 금융 시장에 기존 채널이 아닌 IT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 분야가 생겨나고, 여기서 새로운 경쟁자가 생겨나기도 한다. 디지털 기술 발달로 은행과 고객의 쌍방향, 실시간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핀테크 영역 확장은 시간문제다.
핀테크가 금융 시장 파괴로 불리는 이유는 금융사가 아닌 IT 기업이 금융업에 진출하고, 자금과 담보가 아닌 IT를 전면에 내세워 기존의 금융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엎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금융 시장이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고 생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핀테크로 불리는 새로운 기술 융합 또는 기술 우위의 핀테크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우리나라는 핀테크 기업을 별도로 분류할 수 있는 기준도 없고 미국, 영국 등이 시행하는 정부 차원의 양성 프로그램도 미미한 수준이다.
전통 금융사의 중장기 경제 전망은 암울하다. 은행 간 M&A도 지속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2020년까지 북미 지역 은행의 15~25%에 해당하는 7000여개 은행이 M&A로 사라질 전망이다.
IT 컨설팅사 액센추어의 조사에 따르면 은행의 투자 대상 1순위로 온라인 뱅킹(43%)이나 모바일 뱅킹(20%)을 꼽은 고객이 많았다. 인터넷과 모바일을 기반으로 하는 소셜미디어는 은행 산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투자할 은행이나 은행 상품을 고를 때 전문가의 조언 대신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사람들의 평가를 보고 결정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디지털 트렌드는 기존 은행에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 디지털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뒤처지고 실패할 수 있지만 효율 높게 활용한다면 경쟁자들을 제치고 앞서 나가는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