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고조 유방이 천명이 다했음을 느낀다. 황후가 묻는다. “훗날 승상 소하가 죽으면 누구로 대신할까요.” “조참이 할 것이오.” 유방이 죽자 혜제가 뒤를 잇는다. 혜제 시절에 소하가 죽는다. 조참이 뒤를 이었다.
소하 생전에 조참은 항상 소하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다. 조참이 대개혁을 하리라 수군거린다. 몇 달 뒤, 겨우 관리 몇 명만 교체했을 뿐 그 뒤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부하들을 데리고 술판을 벌이기 일쑤였다.
보다 못한 혜제가 관리를 시켜 이유를 물어 보게 한다. 관리는 실컷 혼이 난 채 쫓겨나온다. 참다 못한 혜제가 조참을 불러들인다. “승상, 어찌 밤낮 술만 마시고 공무는 뒷전인가. 천하를 어찌 하려 하는가.” “폐하께서는 돌아가신 고조 폐하보다 더 영민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물론 아니지.” “그럼 제 재주가 소 승상보다 낫다고 여기시는지요.” “글쎄, 미안하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네.” “고조 폐하와 소 승상이 평생 제도를 갖췄습니다. 지금 이것을 따르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을지요.”
소규조수(蕭規曹隨). `소하가 만든 것을 조참이 따르다.` 옛 것을 답습해 고쳐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요즘 세상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비즈니스 환경은 수시로 변한다. 고객 요구도 달라진다. 기업은 변모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데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조참의 사례를 보라. 성공했다면 계속하라. 상식은 그렇게 말한다. 상식은 `변화 그 자체를 위한 변화`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엄연히 형식과 본질은 다르다.
영국 런던대 경영대학원(런던비즈니스스쿨)의 프릭 버뮬렌 교수와 파니시 푸라남 교수,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란제이 굴라티 교수는 지속된 변화에 장점이 있다고 한다. 기업은 더욱더 창의 기업이 된다. 모든 것이 잘될 때 문제점은 드러나지 않는다. “정작 건강해 보일 때 동맥경화를 의심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공한 기업도 경쟁 여부와 상관없이 가끔 변화가 필요하다. “변화가 필요한 이유가 꼭 외부에 있지만은 않습니다.”
2001년 시스코는 처음 적자를 기록했다. 3개 사업부 구조를 재편하기로 한다. 사업부마다 마케팅, 판매, 연구개발(R&D) 부서를 따로 뒀다. 사업부 밖으로 지식이 흐르지 않았다. 제품에서 기능 중심으로 바꿔야 할까. 두 형태를 조합한 매트릭스형이 필요한 듯했다.
책임 소재는 명확지 않고, 관리는 난해했다. R&D 기능은 통합하고 11개 그룹으로 나눈다. 매트릭스형 대신 조직을 주기 진단하고 혁신하기로 한다. 시간이 지나자 경화 현상이 나타난다. 통합된 R&D 부서는 서서히 고객과 거리가 생긴다. 2004년, 경영 상황은 문제없었지만 3개 경영협의회를 만든다. 역할은 고객과 소비자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 과거로의 회귀처럼 보이기도 했다. 혁신을 두 번 했고, 문제는 잦아들었다. 두 번째는 자발로 이뤄진 것이었다.
세 저자는 건강해 보일 때 문제는 없는지 진단해 보라 한다. 이른바 `기업 콜레스테롤 테스트`다. 몇 가지를 따져 보라 한다. 부서 간 협력이 사라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증상은 이미 시작됐다. 새로운 사업 기회나 시장을 놓치고 있는가? 위기가 닥치기 전에 혁신을 준비하라. 자원이 어딘가로 집중되는가?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진다는 증거다.
저자는 커뮤니케이션과 협력, 적응 역량, 자원의 균형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12개 질문을 한다. 8~12개에 `그렇다`라고 답했다면 병증은 이미 꽤나 진행된 상태다. 3~7개 정도면 변화의 적기다. 0~2개만 동의한다면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세 교수는 `변화를 위한 변화`라는 기고문에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변화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가.” 우리 자신에게 물어 보자. 변화의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변화에는 그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이유를 찾아야 할 때는 변화가 없을 때 아닐까.
제니퍼 마라빌라스 교수의 조언도 마찬가지다. “성공하는 기업에 미래는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는 것이다.” 현재 스타트업이 많지만 시장에 적응해서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다.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쯤이면 대개 너무 늦었기 마련입니다.”
변화가 필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많은 기업이 다른 기업과 동일한 시장, 동일한 기회를 좇는 것. 바로 `터널 비전`에서 벗어나기다. 다른 방식으로 경쟁하라. 차이를 만들어라. 변화로 경쟁자보다 앞서라. 앨프리드 웨스트 SEI 인베스트먼트 회장은 이것을 `연쇄 혁신가(serial changer)`라 부른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