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스타트업 투자, 법대로 했는데도… 세무조사 `덜덜`

국내 한 대기업 계열사가 최근 A스타트업 투자를 위해 내부보고 과정을 밟던 중 마지막 단계인 회장 결재를 받지 못해 좌절됐다. 이미 같은 계열사 한 곳에서 투자를 진행한 상태여서 자칫 회장이 세무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공정거래법은 대기업의 스타트업 투자에 대해 별다른 제한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하지만 세법은 다르다. 계열사가 스타트업에 중복 투자했을 경우, 세무조사 표적이 될 수 있다. 뒤늦게 투자한 계열사 덕에 먼저 지분을 산 기업이 이득을 볼 개연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세법은 이렇게 얻은 이득을 증여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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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23일 업계에 따르면 세법 규정 탓에 일부 대기업이 스타트업 후속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증여세 과세 조항인 종래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세법) 제32조는 특수 관계가 있는 누군가로부터 경제적 가치를 계산할 수 있는 유·무형 재산을 직·간접적으로 무상 이전받을 경우 증여세를 부과한다.

이 같은 규정을 적용하면 스타트업에 대한 계열사 간 중복 투자는 대부분 증여로 판단된다. 예를 들어 대기업 A계열사가 현재가치 1000원인 B스타트업에 100원을 투자해 지분 10%를 확보했다. 그런데 이후 같은 계열사 C가 추가 투자를 넣으면서 B스타트업 가치가 2000원으로 뛰었다. 이렇게 되면 A의 지분가치도 지분율에 따라 2000원에 10%를 곱한 200원으로 두 배 늘어난다. 이때 세법은 C가 투자라는 형태로 A에게 이득을 무상으로 넘겨줬다고 해석한다.

A가 번 돈 중 일부에는 회사 오너 몫도 포함돼 있다. 오너가 직접 투자하지 않더라도 보유한 지분만큼 수익을 나눠가지기 때문이다. 과세당국은 세무조사 시 오너 재산 증식 여부를 중점적으로 파헤친다. 스타트업 투자가 오너와 관련한 법률적 문제로도 불거질 수 있는 것이다. 과세당국은 투자를 빌미로 세금을 피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이 같은 제제를 가한다. 실제 현재 지분투자 구조상 스타트업을 우회 상속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공정거래법은 부당한 형태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 대기업 투자를 열어줬다. 시가로 해당 스타트업에 돈을 넣는다면 문제 삼지 않는다. 시가는 객관적인 제3자가 평가한 시장가격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벤처캐피탈 회사가 평가하는 금액이 스타트업에 대한 시가다.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을 지낸 최진영 변호사는 “세법 취지는 공감하지만 갈수록 대기업 투자가 위축되고 있는데다 스타트업 육성이 시대적 흐름인 만큼, 스타트업에 한해 대기업 중복 투자를 허용하는 특례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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