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연구자들은 `엑소더스`를 꿈꾼다. 우리나라 연구개발(R&D) 현장이 무거운 규제에 짓눌렸다. 해외 각국과 비교해 정부의 규제 부담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외부 활동을 일일이 신고해야 하는 청탁금지법 규정이 연구자의 활기와 창의성을 떨어뜨리는 새로운 강력 규제로 작용할 공산이 커졌다.
지난 13일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정부 R&D의 지나친 규제와 간섭이 도마에 올랐다.
김경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연구원 등 28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6.8%(187명)가 정부 R&D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나친 규제와 간섭`을 꼽았다. 정부 R&D 혁신 방안의 실효성을 묻는 질문에도 `연구자를 위축시키는 황당한 규제를 양산하고 있다`는 답변이 46.2%(129명)로 가장 많았다.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규제에 옥죄인 현실이 고스란히 투영된 것이다.
규제에 짓눌린 연구자들은 아예 탈출을 꿈꾼다. 같은 조사에서 `R&D 환경, 처우, 조직 문화 등을 고려했을 때 어느 나라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한국에서 연구 활동을 계속 하겠다`는 답변은 8.6%(24명)에 그쳤다. 반면에 응답자의 48.6%(136명)는 `기회가 되면 미국, 중국 등 해외로 나가고 싶다`고 답했다. 37.1%(104명)는 `좋은 조건으로 제안이 오면 고민해보겠다`고 반응했다.
실제 다른 국가에 비해 우리 정부의 규제 전반이 무겁다는 지적이다. 최근 발표된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종합순위는 평가 대상 138개국 가운데 26위로 상위권이다. 그러나 국가경쟁력의 기본 요인 가운데 제도는 63위로 중위권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정부규제 부담`을 따로 평가한 항목에서는 105위로 순위가 뚝 떨어졌다.
관련 부처도 이 같은 사실을 인정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28일 해당 자료를 발표하면서 제도 요인에 대해 “그동안의 규제 개혁 노력 결과 제도 요인은 3년 연속 순위가 상승(82→69→63위)했다”면서도 “하지만 절대순위는 아직 부진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가뜩이나 규제가 강한 사회에서 청탁금지법이 산·학·연·관 관계자들의 교류에 찬물을 끼얹는 또 다른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규제 개혁 노력에도 역행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관 및 학계 관계자들은 외부 활동 시 `사전 신고 절차` `외부 강의 사례금 상한액`을 대표 걸림돌로 꼽았다.
한 연구기관 관계자는 “학계와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는 한 저명한 교수는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강연료 숫자 단위 자체가 바뀌었다”면서 “기존 강연료가 너무 비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해당 분야 기업과 연구기관에는 강연 하나로 몇천만원이 드는 프로세스를 줄일 수 있다. 그만큼 가치를 인정해 준 금액”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전 신고 절차도 까다로워진 마당에 굳이 거리가 먼 곳에 가서 시간을 뺏기며 강연할 이유가 줄었다”고 덧붙였다.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