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코오롱은 세계 세 번째로 폴리이미드(PI) 양산에 성공했다. 슈퍼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인 PI는 우주항공에서 필요로 한 특수 목적의 기술이었다. 이 때문에 독자 개발이 쉽지 않았지만 연구개발(R&D)에 착수한 지 7년 만에 거둔 성과였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연구소엔 곧바로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차세대 PI 제품은 세계 1등을 하자는 공감대가 임직원 간에 형성됐다. 바로 `색이 없는(Colorless)` 투명 PI 개발에 착수한 것이다. 코오롱은 기존 폴리이미드의 장점인 내열성과 기계 물성을 유지하면서 단점인 흡습성과 색을 없애면 유리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렇게 도전은 다시 시작됐고, 이번에는 10년 만인 올해 투명PI 개발에 성공했다. 코오롱은 투명 PI의 시장성이 충분하다고 보고 양산 설비 구축에 800억원을 투입키로 했다.
소재는 흔히 `산업의 쌀`로 비유된다.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재 개발은 쉽지 않다. 많은 시간과 자본이 필요하다. 코오롱이 유색 PI에서부터 시작해 투명 PI를 완성하기까지 무려 17년이 걸렸다.
소재 개발은 그만큼 힘들기 때문에 기술력이 있어도 선뜻 뛰어들 수 없다. 그러나 새로운 소재 없이는 새로운 제품도 없다. 코닝이 얇고 단단한 강화유리를 만들지 못했다면 미려한 느낌의 아이폰도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최근 경기 침체가 심화되면서 `실용주의` `효율성`이란 이름으로 개발을 중단하거나 사업을 철수하는 일이 자주 보인다. 기술 한계, 현실 문제, 불가피한 사정 등 이유가 복합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뚝심 경영`이 아쉽다. 단순하게 밀어붙이는 힘이 아니라 미래 가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실천하는 저력이 필요하다. PI 개발 과정을 취재하면서 놀란 건 연구진의 노력뿐만 아니라 이들을 믿고 지원한 경영진의 신뢰와 의지였다.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