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불명확성으로 사법부 판단에 의존한 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발효됐다. 부패지수 37위인 우리나라 부패 수위가 얼마나 심각했으면 법으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정부의 심정 또한 이해된다. 이 법 시행으로 우리 사회가 혁신되고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다양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음에도 우선 시행하고 보자는 시도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중소상인과 서민들이 경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차치하고라도 시행착오에 의해 생겨나는 잠재된 범죄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또 법 취지와는 무관하게 우리 사회의 장점을 파괴할 수 있는 요소도 간과할 수 없다.
자문회의를 마치고 감사의 뜻으로 마련된 식사자리는 없어도 되고, 설렁탕 정도로 대체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기업 네트워크 강화를 위한 골프 접대도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또 다른 건전한 문화가 형성되리라는 기대가 오히려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사를 표현하는 길을 꽁꽁 묶어 놓고 천편일률로 적용됐을 때 부담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궁금하다. 어른을 방문하고,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찾아갈 때는 빈손으로 가지 말라는 가르침을 기억하기에 학생들에게 `2000원짜리 커피 한 잔`을 들고 스승을 찾아가는 예를 가르쳤다.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을 제자들에게 가르치려는 시도였지만 이제는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됐다.
감사의 방법을 다른 방식으로 하도록 가르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학생을 신고해야 하는 것은 과연 진정한 교육자일지 반문해 본다. 한 번 가르침으로 안 되면 두 번, 세 번 학생이 이해하고 따를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지만 이제는 스승이 제자를 신고해야 한다는 현실이 참담하다. 신고는 나 또는 우리 사회의 위협이나 파괴 징조를 자진해 알림으로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적극 방식이다. 법으로 강제하는 신고제도는 사회 불신을 야기하고 돌이킬 수 없는 문화 폐해를 낳을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신뢰`가 상실돼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불신해서 많은 것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가 더 병들지 않을까 우려된다.
외부 강의를 할 때는 누가·왜 초청했는지, 강의 주제는 무엇이며 강의료는 얼마인지 신고하라는 공문을 접수했다. 사전 검열로 비쳐지는 과도한 시행으로 법의 본질을 흐릴 수 있는 대목이다. 성적 수정을 요구하는 학생에게 교수의 양심에 따라 처리하던 상아탑의 마지막 보루도 허물어지고 말았다. 부정청탁과 금품수수를 방지하려는 시도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하지 마라”는 것을 요구할 뿐 “무엇을 하라”는 가르침을 주지 못해 반성과 반성을 거듭해 왔다. 이번 김영란법을 교육받으면서 왜 우리는 동일한 반성을 또 해야 하는지 답답하다. 음식점이나 골프장 접대 또는 선물가격을 제한해서 야기되는 식당 종업원, 소상공인, 골프 도우미, 관리인을 보호할 대책은 마련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신세 진 이들에게 예를 표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미풍양속을 보존할 수 있는 대안은 생각해 보았는지, 신고포상 제도로 신뢰를 희생시키지 않기 위한 처방전은 마련돼 있는지 묻고 싶다. 법망을 피하기 위한 편법을 방치해 피라미만 잡을 뿐 실제 범죄자는 놓치고 마는 졸속 행정은 기우인지도 묻고 싶다.
김영란법을 국민 스스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길이 청렴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라 믿는다. 이 법의 시행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를 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여러 부작용으로 인해 개정이 거론되고, 또 다른 부작용을 치유하려고 더 많은 사회 비용을 지불하지 않기 위해 정부도 국민도 한마음이 돼야 한다. 김영란법 성공의 비결이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ece.sk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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