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가운데 유일한 정부 소유 은행인 우리은행이 `4전5기` 끝에 흥행을 끌어내며 민영화에 성큼 다가섰다.
지난 23일 마감한 우리은행 지분 매각을 위한 예비입찰에는 한화생명, 한국투자금융지주, 보고펀드, 오릭스 등 18곳 이상의 투자자가 몰리면서 어느 때보다 매각 성사 가능성을 높였다.
투자자는 지분을 8%까지 살 수 있었으며, 8% 매입 희망자도 3∼4곳 이상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상업은행·한일은행 등 부실 은행이 한빛은행으로 합쳐지면서 탄생했다.
이후 경남·광주·평화은행 등이 추가 합병돼 우리금융지주가 됐다. 이 과정에서 투입된 정부의 공적자금만 13조원에 이른다. 우리은행을 민영화해 공적자금을 회수하려는 정부는 2010년 들어 매각 작업에 본격 들어갔지만 네 차례나 불발됐다. 이번이 다섯 번째 시도다.
◇우리은행, 우리금융지주 전환 `시동`
우리은행은 과점주주 매각 방식이 성공리에 완료되면 내년부터 금융지주사 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한다. 과점주주들이 선임한 이사들로 이사회가 새로 꾸려지고, 차기행장 선임 등이 마무리되면 지주사 체제로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착수한다.
우리은행은 2014년 민영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우리금융지주를 흡수합병하고 주요 계열사인 우리투자증권, 우리아비바생명 등을 패키지로 매각한 탓에 성장 동력이 떨어진 상황이다.
이미 지주사 전환을 위한 자회사 편입 중소형 금융사 인수 작업을 내부로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경쟁력 강화 방안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투자자들의 우리은행 인수 의지가 지속 가능해야 한다. 기업 매각 과정에서 예비입찰에 뛰어든 투자자들이 기업 실사에 들어간 후 투자 의지를 접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은행은 그동안 빠른 성장세와 성장 가능성 등을 보인 만큼 실사 과정에서 투자자들이 인수 의지를 접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오는 11월 진행되는 본입찰은 가격과 자금 조달 능력 등을 보고 최종 낙찰자가 결정된다. 투자자 몇 곳이 빠지더라도 매각 지분 30%를 모두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도 전제 조건이다. 또 이사회에서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이사들을 선임한 과점주주들도 이에 동의해야 한다.
◇우리은행 매물로 매력… 민영화 가능성 높아
우리은행의 실적이 탄탄해지고 안정되면서 시장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이익 변동성이 줄어들고 건전성이 꾸준히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1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시현했으며, 올해에도 호실적을 이어 가고 있다.
상반기 기준 해외 부문 실적도 516억원 순익을 거둬들이면서 6.85% 상승했다.
자산 건전성 개선이 가장 뚜렷하다. 고정 이하 여신 비율이 1.22%까지 하락했으며, 요주의 비율도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하지만 흥행이 본입찰까지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본입찰 직전에 써 내는 예정 가격 이상으로 응찰하는 투자자가 많아야 실제 지분 매각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2014년 소수 지분 매각 당시에도 본입찰까지 10개 이상의 인수 후보들이 들어왔지만 투자자 대부분의 응찰 가격이 예정 가격을 밑돌아 매각에 실패한 전례가 있다.
금융 당국은 우리은행 매각이 마무리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 유효 수요가 실제 투자로 이어지도록 할 방침이다.
앞으로 인수 후보자들은 오는 30일부터 3주간 실사를 통해 입찰 가격을 결정하게 된다. 이후 11월 투자의향서(LOI)를 제출한 투자자를 대상으로 본입찰이 진행된다.
본입찰까지 무난하게 진행되면 예금보험공사(예보)는 11월 중에 낙찰자를 결정하고 올해 안에 주식 양·수도 및 대금납부 등 매각을 마칠 계획이다.
매각이 완료되면 예보는 우리은행과 체결한 경영정상화 이행약정(MOU)을 해지한다. 예보는 지분 21%를 보유한 재무 투자자가 되고 새로운 투자자가 중심이 돼 경영을 하라는 의미다.
예보는 남은 공적자금 관리 차원에서 비상임이사 1명을 추천할 수 있는 권리만 가진다.
이번 매각 방안은 과거 네 차례 우리은행 정부 지분 매각 실패의 교훈과 이번에는 반드시 민간에게 주인을 돌려줘야 하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됐다. 시장에서도 투자 수요에 적합하고 성사 가능한 매각 방안이 도출됐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보유 지분 없이도 은행 경영에 개입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마당에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관치금융 폐해 방지가 관건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우리은행 매각 방안으로 과점주주 방식을 들고 나오면서 과점주주 모델의 성공 여부가 투자자의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 유럽, 아시아 등의 45개 은행 가운데 JP모건, 씨티, 웰스파고 등 18곳이 과점주주 방식이었다. 과점주주 지배 구조는 마땅한 지배주주가 없으면서 상위 3대 주주의 지분 합계가 10%를 초과하는 경우를 통칭한다. 국내 4대 금융지주사 가운데에서도 농협금융지주를 제외하면 모두 과점주주 방식이다. 세계 대다수 은행이 채택하고 있을 정도의 일반 형태다.
공자위가 내놓은 `히든카드`는 사외이사 추천권이다. 우리은행 지분을 4% 이상 인수하면 사외이사 1명을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줘서 경영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스웨덴과 유사한 경영 모델이다.
우리은행 민영화가 완료되더라도 당분간은 새로운 사외이사와 기존 사외이사가 함께 경영을 감시하는 `거대 이사회` 체제로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은행 사외이사 6명(비상임이사 1명 제외) 가운데 4명은 임기가 내년 3월까지, 2명은 2018년 3월까지다.
전문가들은 과점주주가 경영에 공동 참여하는 지배 구조 특성 때문에 우리은행의 매각 및 완전한 민영화를 달성하려면 정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점주주 방식으로 지분을 매각한 이후에도 인사권에 관여하면서 관치금융을 이어 갈 경우 매각 자체가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는 과거 KB금융지주 사례에서도 엿볼 수 있다. 1995년 민영화돼 정부 지분이 1%도 없지만 행장 선임 때마다 낙하산 논란에 시달렸다. `KB사태` 이후 결국 KB금융지주는 사규를 손질해 주주가 사외이사 예비후보를 추천할 수 있도록 했다.
과점주주들의 구성도 민영화 성패를 가를 만한 요소다. 특정 국가의 자본 또는 사모펀드 등에 지분이 집중되거나 일부 투자자가 의결권을 공동으로 행사한다는 이면 약정을 맺는다면 과점주주 방식의 장점이 퇴색될 수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과점주주 후보군과 우리은행 안팎의 가장 큰 우려는 민영화 후 정부 인사 개입 가능성”이라면서 “주주 중심의 자율 경영 보장이 민영화 성공의 시발점”이라고 지적했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 김지혜 금융산업/금융IT 기자 jihy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