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하나 더 있어요.” 한 꼬마가 손을 들어 가리키며 말했다. 공원을 가로질러 불 꺼진 가로등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군. 생각보다 너무 많은 걸.” 불 꺼진 가로등 찾기 게임을 시작한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캐머런 버크가 루미스케이프를 설립한 지 6년이 됐다. 가로등을 지방정부에 납품, 제법 성공을 거둔 참이었다. 습도, 움직임, 주변 조명을 감지해 밝기를 조절하는 신형 제품의 출시도 앞뒀다. 다만 주 고객인 지방정부는 생각처럼 효율이 없었다. 가로등 관리는 엉망이었다. 제품은 제 기능을 못했다.
고민 끝에 사업 방식을 바꾸기로 한다. 가로등이 아닌 서비스를 팔기로 한다. 설치비 대신 사용료를 받는 방식이다. 설치, 유지, 관리까지 도맡는다. 회사 이사회는 새 전략을 반긴다. 이제 새 고객만 찾으면 된다. 미래는 밝아 보였다.
그런데 이즈음 새 주문이 밀려든다. 문제는 예전처럼 가로등을 구매하겠다는 것. 뒤늦게 예산을 마련한 지방정부가 예상치 못한 주문을 내놓았다.
“닐, 우리는 새 전략이 우리를 위해서도 고객을 위해서도 더 나은 것임을 알고 있어.” “하지만 버크, 예산을 마련하려고 한참을 일한 사람들에게 이제 와서 임대밖에 선택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미첼 와이스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한 사례 연구에서 “고객이 당신의 생각과 다른 것을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다. 더욱이 테이블 위 계약서가 창사 이래 가장 큰 계약 건이라면.
회사 내 의견이 갈린다. 영업과 재무 부서는 서비스 모델로 단숨에 바꾸는데 반대한다. 고객 확보를 생각하면 판매와 임대 둘 다 필요하다. 사용이 어려운 점은 제품 개선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시간을 두고 수익성 높은 모델로 전환하면 된다.
버크와 전략 부서의 판단은 다르다. 기능은 제대로 사용되지 못했다. 판매 방식은 기능을 돋보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고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는 것은 무책임하다. 게다가 관료주의는 구매로 결론 낼 것이 자명했다. “지금처럼이라면 우리 제품의 기능은 무용지물이 될 게 뻔합니다. 앞으로 할 업그레이드도 마찬가지고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미래를 내다보는 결단이 필요한가. 두 가지 모두 가져갈까. 주된 고객에 맞춰 지금 전략을 고수해야 할까.
빅벨리 최고경영자(CEO) 잭 커트너는 전략 부서의 선택을 지지한다. 장기 안목으로 필요한 전략이라면 예외를 남기지 마라고 한다. 하이브리드 방식도 바람직하지 않다. 단지 고객을 쉬운 선택으로 내모는 방법일 테니. 장기 전략을 제안하고, 상황에 따라 전략을 바꾸지 마라. 결국 고객은 어떤 것이 나은지 알게 된다. 커트너의 조언은 이렇다. “더 이상 가로등을 판다고 생각하지 마라. 안전한 공원과 거리를 판매하라.”
반면에 가브딜리버리 CEO 스콧 번스의 생각은 다르다. 새 전략은 훌륭하지만 그렇다고 고객을 놓칠 필요는 없다. 우선 고객을 확보하고 그들의 관심을 바꿀 여지를 두라. 새 전략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우선 가로등을 판매하고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라. 비즈니스 모델을 유연하게 유지하라. “전략이란 것이 수익을 가로막게 하지 마라.”
정답은 없다. 몇 가지 조언은 있다. 문서보관 회사가 디지털 저장 서비스로 전략을 바꾼다. 영업 부서는 준비되지 않았고, 저가의 디지털 서비스만 판매했다. 보상 방식을 바꾸자 디지털 서비스 매출은 급감한다. 프랭크 세스페데스 교수는 “전략과 영업을 맞추라”고 조언한다. 고객과 기업이 가치를 공유할 수 없다면 문제는 예견된 것이다. 영업 부서가 활용할 전략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라. 두 저자는 이것을 `거래 프로파일`이라고 부른다.
와이스는 흥미로운 질문을 하나 더 던진다. 새 제품의 기능은 매력이 있지만 운용 능력이 없는 고객에게 새 제품 팔기란 어떻게 해야 할까. 와이스는 공공 부문을 예로 들어 말한다. “그들은 부담스런 고객입니다. 조달 과정은 복잡하고, 고객의 생각을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운영과 관리 능력은 떨어지죠, 제품 기능이 새롭고 복잡할수록 불안감은 더하죠.” 고객과 기업의 가치를 동조화하라는 조언은 그래서 더 기억할 만하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