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과 카드업계, 밴(VAN) 업계가 합의해 추진하고 있는 5만원 이하 신용카드 무서명거래 전국 시행에 또다시 빨간불이 켜졌다.
과거 밴 대리점 전표수거료 분담금 문제로 홍역을 치르다가 가까스로 타결에 성공했다. 하지만 최근 KB국민카드가 현행 수수료율 재조정을 요구하며 계약 체결을 미루고 있다. 일부 밴사는 공정거래위원회 제소까지 검토하고 있어 파행이 예상된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말 전면 시행을 앞두고 있는 무서명거래 전표수거료 등 합의안에 국민카드가 반대하며 밴사와의 계약 체결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존 합의안은 무서명거래 시행으로 감소하는 밴 대리점의 수익을 카드사와 밴사가 보전해 주는 것이다. 기존의 밴 대리점 전표 매입 수수료 1건에 발생하는 36원 가운데 18원은 카드사, 12원은 밴사가 각각 보전해 주고 밴 대리점이 손실 6원을 부담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하지만 KB국민카드는 내년 밴 수수료 산정 방식이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바뀌기 때문에 수수료율을 재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 대표로 신한카드가 중재안을 만들어 밴사에 제시했고, 국민카드를 제외한 나머지 카드사는 합의했다. 반면에 국민카드는 현행 수수료율이 문제가 있다며 국민카드 자체 산정 방식을 밴사가 수용해 줄 것을 요구했다.
밴 업계는 KB국민카드 산정 방식은 업계 합의안보다 수수료를 더 인하하는 계산 방식으로 돼 있어 수용 불가를 고수하고 있다.
한 밴사 관계자는 “이번 분담금 조정안은 전표 수익 인하분을 보존해 주는 취지로 카드업계와 밴 업계가 한 발 양보해 합의한 것”이라면서 “내년 정률제 시행을 앞둔 국민카드가 이번 협상으로 밴 수수료 자체를 더욱 떨어뜨리려는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KB국민카드는 일부 시행되고 있는 5만원 이하 무서명거래 수수료 2개월 치도 계약 연기를 이유로 밴사에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밴사는 이 같은 국민카드의 대응에 공정거래위원회 제소 등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금융 당국이 중재에 적극 나서 줄 것을 촉구했다. 과거 분담금 문제를 정부 중재로 합의한 만큼 이번에도 중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업계 2위인 국민카드가 자사 밴 수수료를 낮추기 위해 계약 거부까지 하는 것은 정부 정책에 역행하는 처사라는 입장이다.
또 다른 밴사 관계자는 “KB국민카드는 5만원 이하 무서명거래 도입 이전에 밴사와 1만원 이하만 무서명거래를 도입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면서 “정부가 혼선을 막기 위해 금액을 5만원으로 올렸을 때도 밴사가 이를 수용했는데 이제 와서 국민카드가 판을 뒤집는 형국”이라고 꼬집었다.
KB국민카드 관계자는 “정부 시책인 만큼 밴업계와 지속해서 협상에 나설 것”이라면서도 “다만 내년에 정률제로 전환되는데 신한카드가 만든 산정 방식을 그대로 수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