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32> 가치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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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개 상영관에 좌석 7600개를 놓았다. 그 가운데 큰 곳은 700개 좌석을 갖췄다. 다리를 뻗을 수 있을 만큼 공간이 넉넉했다. 좌석은 컸고, 개인 팔걸이도 있었다. 앞사람 머리나 어깨가 스크린을 가리지도 않았다. 음향과 영상기기는 이른바 `스테이트 오브 아트` 수준이었다.

호텔은 경쟁에 직면해 있었다. 저가 호텔 시장은 공급 과잉이었다. 시장을 두 유형으로 나눠 본다. 숙박비 80프랑 안팎의 별이 없거나 하나 정도의 저가 호텔, 200프랑의 별 두 개짜리 중저가 호텔. “고객은 무엇을 가치 있게 생각할까” 자문해 본다. 80프랑이지만 고객 가치만큼은 200프랑짜리를 넘어서고 싶었다. 몇 가지는 버리기로 한다. 식사 공간, 건축미, 라운지 시설…. 원스타 평균만도 못했다. 방 크기도 오히려 줄였다. 호텔 방이라면 있을 법한 책상도 비품도 없었다. 하지만 침대는 편안했고, 청결했고, 조용했다. 하룻밤 숙면을 위해 가장 많은 고객이 바랄 만한 것들로 채웠다.

1등석을 없애기로 한다. 그 대신 비즈니스석을 혁신하기로 한다. 안락함은 업계 표준을 한참이나 넘어섰다. 공항까지는 기사 딸린 리무진이 제공됐다. 대기나 환승 시간에는 사무 공간이 제공됐고, 샤워와 세탁 서비스도 가능했다.

요즘 얘기가 아니다.

1988년 베르 클라이스, 1985년 아코르, 1984년 버진애틀랜틱 항공이 자신이 속한 산업에 던진 도전장이었다. 지금부터 무려 30여년 전이다.

2012년 델컴퓨터는 한 연구를 지원한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300개가 넘는 정보기술(IT) 기업 경영진을 조사한다. 그리고 기업 관심이 `효율성`에서 `가치`로 바뀌고 있다고 결론 내린다. 비용 절감은 여전히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기업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해 가고 있었다.

“흔히 효율성이란 비용 절감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것이 그 자체로 가치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경쟁 기업보다 앞서가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이런 경쟁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가치 혁신`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기존 방식과 다르다고 한다.

첫째 산업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기도 한다. 둘째 경쟁 우위는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시장을 지배하는 데에도 새로운 방식이 있다. 셋째 고객 유지 및 확장에 시장 세분화와 맞춤 방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 고객 집단의 공통 가치에 집중한다. 심지어 일부 고객을 잃더라도. 넷째 기존 자산과 역량을 활용하자. 하지만 `내가 새로 시작한다면 어떻게 할까` 하며 항상 자문하라. 다섯째 제품 가치에 매몰되지 마라. 토털 솔루션을 생각하라. 그럴 때 고객 가치는 혁신된다.

조금 더 흥미로운 영화, 더 나은 서비스, 더 나은 마케팅으로 경쟁하고 있었다. 베르 클라이스는 이것 대신 새로운 방식을 찾았다. 모든 장점을 어느 정도씩 제공하고 있었다. 별 두 개짜리 호텔이면 이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고, 별 하나짜리는 그보다 못한 게 당연했다. 아코르는 많은 고객이 가장 바라는 몇 가지에 주목한다. 가치 요소를 나열해 보고, 가치 곡선을 그려 보았다. 포뮬러 1이라 부른 그들의 새 가치 곡선은 경쟁자 가치 곡선들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버진애틀랜틱 항공은 가치 곡선이 따라잡힐 즈음 또 다른 가치 혁신을 시작한다. 전통이 시장 세그먼트를 나누고 껴안으라고 할 때 버진애틀랜틱은 전통을 접는다. 퍼스트 클래스란 세그먼트를 버린다. 컴팩은 누구보다 빨리 포천 500대 기업에 들었지만 IBM 따라잡기에 집착한다. 경쟁에 다시 매몰된다. IBM이 벼랑에 먼저 몰렸지만 컴팩 역시 멀지 않은 곳까지 다가와 있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멀티플렉스는 베르 클라이스가 28년 전에 던진 도전의 결과다. 비즈니스 클래스 서비스에 항공 산업을 눈뜨게 한 것은 버진애틀랜틱이었고, 아코르는 비즈니스호텔이라는 새 세그먼트를 만든다.

이들은 비용 혁신이기도 했다. 25개 상영관이 매표소와 로비를 공유했다. 입소문은 광고비를 대신했다. 조립식 건축 방식은 아코르에 건축비 절반과 관리 비용의 5분의 1을 줄였다. 버진애틀랜틱은 손해 보던 1등석 공간을 수지 맞는 비즈니스 서비스에 붙일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세 기업이 던진 도전장은 정작 경쟁자가 대상이 아니었다. 자신의 산업에 대한 것이었고, 산업의 모습을 바꿨다. 결국 새로운 방식으로의 초대장인 셈이었다. `가치 만들기`라 부르는 새 방식으로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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