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현의 블랙박스]<8>게임업계, 차라리 위기로 몰아넣는 것이 낫지 않나

지난주 학회 워크샵을 다녀왔다. 충남 대천해수욕장 인근에서 열린 1박 2일 세미나였다. 처음 가본 대천해수욕장 밤바다는 갈매기들이 하얗게 내려 앉아 아름다웠다. 해변을 따라서 길게 늘어선 모텔과 조개구이집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한국의 해변이 다 그렇듯 여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에는 유명한 하코네 온천이 있다. 호수를 안고 있는 온천 지대 절반은 료칸이나 온천으로 개발되어 있지만, 상업지 반대쪽 절반은 자연림 그대로 보존됐다. 산림 안에 도로는 나있지만 가로등조차 없다.

미국 서부 해안 역시 마찬가지다. 캘리포니아의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바닷가, 맨하탄비치, 라구나비치, 팔로스버디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너무도 아름다운 해변이다. 이들 해변 공통점 역시 주변에 모텔과 조개구이 집이 없다는 것이다.

의아했다. 분명 하코네도, 미국 해변도 사유지인데 왜 이런 경치 좋은 곳에 모텔과 조개구이 집이 없을까. 그것은 도시 주민 자치회가 난개발을 강력히 막기 때문이다. 개발 억제는 단기적으로는 소유주의 경제적 이익을 억제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지역 전체 이익을 증가시킨다.

왜 갑자기 해변 타령이냐고? 밤늦게 대천해수욕장 해변을 산책하면서 최근 규제 칼날이 들어오는 확률형 아이템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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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현 중앙대 교수

정부나 국회 규제 시도와 게임업계의 반발, 식상한 `올드 드라마`가 다시 재현되고 있다. 게임산업이 시작된 이래 게임업계는 한 번도 사안에 대해 주도적, 능동적으로 대응한 적이 없다.

지금은 기억도 희미한 리니지 PK 파동, 리니지 19세 파동, 게임 중독과 셧다운 논란, 보드게임 사행성 논쟁 그리고 이번 확률형 아이템에 이르기까지 게임업계는 뒷북을 쳐댔다. 항상 규제가 거론되면 자율을 외쳤고 막상 자율을 주면 지키지 않았다.

한 시민단체가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 시행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자율규제 준수율이 2015년 12월 93%를 기록한 이후 2016년 5월에는 88%로 하락했다고 한다. 지난 2015년 7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자율규제를 따른 158개 게임 중 27개만 확률 공개를 했다고 한다.

이런 개별 게임사들의 일탈은 바로 규제의 칼이 들어오는 명분이 됐다. 해변가 여기저기에 슬그머니 모델과 조개구이 집이 들어서 미관을 해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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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기 아이템 확률의 공개한 불멸의 전사

한국 게임은 위기다. 하지만 정작 위기를 절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부조차 게임산업 매출이 늘어 괜찮다는 식의 설명을 내놓는다.

미지근한 물의 개구리는 서서히 물의 온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자신이 삶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뜨겁다고 느끼는 순간 바로 죽음이다.

과격하지만 아예 국회에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를 넘어 법으로 확률을 규정하면 어떨까. 그러면 부분유료화 모델이 일거에 붕괴되고 갑자기 펄펄 끊는 물속의 `게임 개구리`들이 일거에 뛰쳐나오지 않을까. 그래야 죽을 위기에 처한 개구리들에 의해 혁신이 시작될 것 아닌가.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jhwi@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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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형 게임 아이템 적용사례1- 캡슐형 뽑기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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