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류 역사에서 폭력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음을 인지, 이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사회발전에 동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핑커 교수는 이 같은 사회현상 원인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인터넷 기술에 주목했다. 과학기술이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 능력을 높여 폭력을 줄이는데 일조했다는 시각에서다.
인간은 삶을 영위해가며 숱한 경험을 축적하지만 그 모두를 기억해 현실을 진단, 또는 미래 예측시 의식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반면 인공지능(AI)은 이 모든 궤적 정보를 축적하고 그 정보를 빠짐없이 활용,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상황을 두고 최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위 사례만 보더라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사교적 연결망을 제공, 서비스함에 따라 이용자들은 이 SNS를 통해 새로운 인맥을 쌓거나, 기존 인맥과의 유대를 더욱 강화시키기도 한다.
즉, 인터넷 기술이란 몸에 인적 데이터 옷을 입혀 현대인이 상실한 인간성을 상대로 다양한 정보를 제공, 최상의 인적 커뮤니티를 구현해 낸다는 것이다. “함께, 그리고 어떻게 잘 살아야 하는 것인가”란 인문학적 난제를 과학기술의 조력으로 일정부분 해소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대목이다.
이 같은 사례를 근거로 인공지능 사회에 대한 무조건적 두려움은 득보단 실이 크다는 관점이 우세하다. 인공지능 등의 미래기술은 인류의 `이기(利器)`라는 인식에서다.
건물, 교량 등에 부착한 센서와 사물인터넷(IoT) 통신을 통해 붕괴 위험을 미리 예측한다.
그리고 구조 요원이 접근하기 어려운 수해나 재해 현장에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을 대신 투입할 수도 있다.
이미 일본에서는 노령화 사회에 대비한 `간병 로봇` 개발연구가 활발하다. 혹자는 과학기술의 정점이 인류를 멸망에 이르게 한다며 인공지능 자체를 터부시하기도 한다.
이제 우리는 인공지능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져야한다고 본다.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해 수 백명의 인력을 대체할 첨단 기계가 등장했다고 치자. 이 기계에 우리가 전적으로 의존할 것인지, 아니면 노동시간을 쪼개서라도 인간이 노동을 할 것인지를 판단해야하는 것에 직면했다.
이런 가치판단의 경중을 가려야할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인문학적 창의성`이다.
과학기술은 창의성의 무궁한 발현을 위한 최적의 도구다.
인공지능의 무한 가능성에 기인, 인공지능의 미래를 불안하게 여기는 것은 인간에게 이로울 바 없다. 일각에서는 당장 인공지능이 도입됐을 때 생겨날 윤리적 딜레마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례로 자율주행차가 일으키는 사고의 책임 주체를 가려야 하는 문제들이다.
그렇다고 자율주행차 도입을 막을 순 없다. 교통사고 예방과 편리함을 넘어 자율주행차가 인간에게 가져다줄 생활의 변혁에 대한 유혹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로 인해 생기는 다른 문제점은 기술의 보완과 제도적 장치를 통해 해결해야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우매함을 굳이 선택할 이유가 없다.
이동군 군월드 대표 m0127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