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제조업체 A사는 최근 사내 직원이 외국계 수학 프로그램을 사용했다가 10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한 카피에 2억~3억원 규모의 프로그램을 복제해 사용한 것이 화근이었다.
A사 관계자는 “연구소 직원끼리 학습 차원에서 해당 프로그램을 깔았는데 어느날 특별사법경찰관이 들이닥쳤다”면서 “회사가 10억원이 넘는 소송 피해를 당하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A사 직원이 사용한 컴퓨터 소프트웨어(SW) 프로그램은 매스웍스의 `매트랩`이다. 통계, 머신러닝, 컴퓨터 비전시스템, 로보틱스 시스템 프로그램이다. 로봇 개발이나 특수한 목적의 수학 계산에 필요한 프로그램이다. 모듈별 구매가 가능하며, 가격은 1억~2억70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A사처럼 최근 들어 컴퓨터 프로그램을 무심코 내려받았다가 저작권 분쟁에 휘말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27일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6개월 동안 컴퓨터 프로그램 침해 관련 상담 건수는 3407건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상담 건수 6946건의 절반 수준이다. 2014년과 비교하면 전체 상담 건수(3007건)를 크게 넘어선 수치다. 특히 기업에 적용되는 SW 개발용 프로그램과 산업용 프로그램 상담 건수가 부쩍 늘었다.
저작권위원회 관계자는 “상담 사례를 저작권 분쟁 사례로 연결 짓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실제 상담 현장에선 기업의 SW 저작권 침해 상담 사례가 늘었다”고 귀띔했다.
A사처럼 컴퓨터 SW를 무단으로 복제했다가 수사관이 들이닥쳐 소송을 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셈이다.
저작권법 위반은 민사상 책임은 물론 형사상 책임도 피할 수 없다. 악의의 경우가 아니면 적은 벌금형으로 형사 책임을 진다. 다만 A사 사례처럼 민사 소송이 제기될 경우 피해보상액은 커질 수밖에 없다. A사의 경우 법무법인이 SW 카피당 2억7000만원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소 내 6명이 사용했다면 16억원에 이르는 배상 책임을 해야 한다.
중소 업체로서는 회사가 휘청거릴 수 있는 금액이다.
전문가들은 SW를 정당한 대가의 지불 없이 사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값 비싼 SW 가격 정책도 문제로 꼽았다.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매트랩`의 경우 소수 전문가만 프로그램을 사용하다 보니 접근이 어려운 높은 가격 정책을 폈겠지만 일반 SW 프로그램도 가격이 너무 높다”고 지적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나 어도비 프로그램의 경우 카피당 적게는 20만~30만원에 이르고, 데이터베이스(DB)나 전사자원관리프로그램(ERP)은 이용자가 접속할 때마다 정산하는 구조다. SW 운영비만으로도 작은 기업은 큰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나 대학에선 적은 비용으로 구매하게 하고 기업에는 비싼 가격으로 파는 것도 SW 기업의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학생 때부터 친숙하게 사용한 프로그램을 기업에 취업한 이후에도 이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웹툰과 게임 등을 통해 우리 사회도 저작권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문화가 확산됐음을 보여 줬다”면서 “이는 저가 정책에 기인한 바 크다”고 말했다.
그는 “SW 프로그램은 처음 개발 때 비용이 많이 소요되지만 판매하면 할수록 비용이 늘지 않는 구조”라면서 “이를 고려하면 SW가격도 저가 정책을 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컴퓨터프로그램 관련 저작권 상담 건수 (자료 한국저작권위원회)>
이경민 성장기업부(판교)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