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이 나쁘면 기업은 고민에 빠진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수익을 높인다. 마케팅 비용이나 인건비를 줄이는 것도 방법이다. 협력사로부터 부품이나 장비를 납품 받을 때 단가를 조정하기도 한다. 쓰는 비용을 줄여 최대한 이익을 남긴다.
통신사업자도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한다. 지난해 통신 3사가 모두 매출이 감소했다. 상반기 실적이 개선되긴 했지만 힘겹긴 마찬가지다. 통신 3사 1분기 설비 투자액은 5000억원을 넘지 못했다. 전년 동기 대비 45.9% 수준이다.
통신사 투자 축소 피해는 협력사에 전가된다. 통신사에 장비를 납품하는 중소·중견기업도 어려움을 호소한다. 생존을 위해 사물인터넷(IoT) 등 신사업 발굴에 나서지만 상황을 타개할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통신사에 불만을 드러내기 쉽지 않다. 통신사와 네트워크 장비 업계는 하나의 생태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힘들 때는 함께 힘들고 좋을 때는 함께 좋아야 한다. 통신 시장이 활성화되면 협력업계의 상황도 좋아질 것이란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문제는 생태계를 흔드는 행태다. 일부 통신사가 이익을 최대한 남기기 위해 네트워크 장비의 납품 단가를 낮추려고 한다. 심할 때는 연간 20%씩 단가를 낮추라고 요구한다. 통신사 지출을 줄이기 위해 부담을 협력사에 떠넘기는 방식이다. 무리한 납품 기한을 설정해 협력사를 압박한다. 한 네트워크 장비 업계 관계자는 “통신사업자가 정하는 기한 안에 납품하지 못하면 패널티를 받기도 한다”면서 “협력사의 등급이 낮아져 차후 사업에 탈락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협력사는 많다. 한 업체가 힘들어 사업을 접는다고 해서 통신사 입장에서는 당장 문제 될 것이 없다. 상황이 지속되면 생태계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국내 협력사가 사라진 자리를 외국계 기업이 차지하면서 시장을 흔드는 구조로 바뀔 수도 있다.
정부가 `네트워크 장비업체 애로사항 실태조사`를 추진하기로 했다. 통신사와 협력사의 상생을 독려하기 위해서다. 납품단가, 시장 확대, 유지 보수, 공동 연구개발(R&A) 등을 조사한다. 이 사업이 통신 생태계를 건전하게 키우는 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