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결은 인간의 두뇌와 컴퓨터와의 맞대결로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습니다.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하면서 의료 현장도 획기적인 변화가 예상됩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임상의료 실력과 IT기술을 보유한 우리가 강점을 보인 분야인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육성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합니다” 이보름 GIST융합기술원 의생명공학부 학과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뇌과학분야 베테랑 연구자다. 그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서울의대와 아산병원 인턴을 거친 후 당시 불모지와도 같았던 의공학분야를 전공을 선택했다. 의학도가 정보통신과 전기전자 등 엔지니어들도 어려워하는 전문 영역에 들어선 셈이다.
성형외과 등 이른바 잘나가는 임상의사의 길이 눈앞에 열렸지만 과감히 하고 싶은 분야에 도전장을 냈다. 당시 가족과 친구들의 극심한 반대가 있었지만 그의 뜻을 꺽을 수는 없었다.
“환자를 돌보는 임상의사도 매력적인 직업이지만 제가 잘 할 수 있고 가치있는 일을 위해 과감하게 눈을 돌렸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처럼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하나씩 극복하면서 자신감을 쌓게 됐습니다”
의대 재학시절부터 전자공학과 정보통신 분야의 전문서적을 읽는 학생으로 알려졌다. 암기 위주의 학과 공부대신 독서관에서 심리철학과 철학 등 인문학 책들을 두루 섭렵했다. 특히 정신분석학자 푸코와 라캉, 레비스트로스의 저서를 통해 인지과학에 눈을 뜨게 됐다. 단순히 한분야의 연구에만 몰두하기 보다는 깊이있는 지식과 통섭력을 바탕으로 인류를 이롭게 하는 연구를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그가 `뇌 연구`에 빠져든 배경이기도 하다.
굵직한 연구성과도 냈다.
이보름 교수는 지난해 5월 이병근 GIST 기전공학부 교수와 사람이 생각할 때 발생하는 뇌파를 실시간 인식하는 하드웨어를 구현해 네이처 자매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멤리스터를 이용해 뇌파를 실시간 인식하는 인공 신경망 장치를 만들었다. 멤리스터는 메모리(memory)와 저항(resistor)의 합성어로 뇌에 있는 신경세포와 시냅스처럼 빠르고 효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차세대 메모리 소자다.
연구팀은 사람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본뜬 이 인공 신경망에 각 뇌파의 의미를 학습시킨 뒤 같은 신호가 나오면 그 의미를 구별해내는지 실험했다. 사람의 머리에 뇌파 인식장치를 부착하고 `ㅏ` `ㅣ` `ㅜ` 세 가지 발음을 생각하게 한 뒤 그 뇌파를 측정해 멤리스터에 기억시켰다. 이어 셋 중 하나를 생각하게 하자 어떤 발음을 상상하는지 정확하게 분석했다.
그는 대학시절, 교내 탁구대회 2연패한 `핑퐁의 대가`로 주목받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있다는 평을 들은 그가 깊이있는 사고와 정교한 작업이 필요한 의생명공학과의 인연은 필연인 듯 싶다.
의공학은 환자 진료경험이 필요하다. 의사자격증을 가진 그는 엔지니어가 볼 수 없는 곳까지 세밀하게 살필 수 있다. 생체신호, 심전도, 뇌파, 의료영상 등의 환자정보를 단순히 수치만 나타내는 의료 DB에만 의존할 수 없다. 환자와의 공감과 교류를 통한 현장 분위기 이해, 진료경험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국립보건원에서 뇌신경질환과와 유전체연구에 매달렸다. 낮에는 공중보건의 밤에는 서울대병원에서 연구개발에 올인하던 시절이다. 2007년 `감마대역 활성도의 뇌 신호원 국소화`를 주제로 한 논문도 발표했다.
그는 “병원에서 인턴생활을 하면서 의료현장을 피부로 체험하게 됐다. 현장의료 경험과 IT기술을 결합한 선진 의료시스템 개발을 위해 모든 시스템이 잘 구축된 GIST에 둥지를 틀게 됐다” 면서 “GIST 융합기술원은 의사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 연구성과의 시너지 창출이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실제 GIST융합기술원은 병역특례가 가능한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운영중이다.
그의 주요 관심분야는 뇌연구, 뇌파, 뇌영상, 헬스케어 신호처리 기술 U헬스케어다. 현대기아차그룹과는 웨어러블 디바이스 공동개발을 진행하기도 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인공지능 분야에 환자기록, 병력, 검사결과를 빅데이터화해 의료현장에 접목하는 계획을 준비중이다.
그는 “국내 R&D의 경우 유행을 따라 가는 경우가 많다. 정부, 공무원, 일반인들 잘 몰라서 그렇지 AI는 이미 진행되는 연구분야” 라면서 “특정분야의 연구프로젝트에 치중하기 보다는 기본기에 충실해야 한다. 유행을 뒤?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인성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뛰어난 의사나 연구자가 되기 이전에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그의 교육철칙이다.
GIST융합기술원이 인성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다.
“우리나라 임상의학 수준은 세계최고입니다. 하지만 임상연구 분야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는게 현실입니다. 의사과학자육성, 연구중심병원 조성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원프로그램을 확대한다면 좋을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광주=서인주기자 si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