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프트뱅크가 영국 ARM을 인수키로 합의했다는 보도가 이어지자 반도체 업계에선 “당장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소프트뱅크는 통신, 콘텐츠 분야 사업을 주로 펼쳐온 기업이다. 따라서 기술 독점 우려는 적다는 게 업계 반응이다. 다만 회사를 키운 뒤 중국 등으로 되팔 경우 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ARM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같은 시스템온칩(SoC),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모뎀칩(베이스밴드)의 핵심 자산(IP)를 설계하고 이를 반도체 소자 업체에 라이선스하는 IP 전문 업체다. 칩을 직접 생산하지 않고 설계 IP만 판매한다는 의미에서 `칩리스(Chipless)` 업체라고도 부른다.
삼성전자와 애플, 퀄컴 등은 ARM 프로세서 코어 IP를 구매해 이를 기반으로 AP를 만들어 판다. 엑시노스(삼성), A시리즈(애플), 스냅드래곤(퀄컴) 등은 모두 ARM 아키텍처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지난해 출하된 모바일 AP 가운데 ARM 코어를 탑재한 제품 비중은 95%를 웃돈 것으로 전해졌다. 사물인터넷(IoT)과 차량용 마이크로컨트롤러칩(MCU) IP 시장에서도 ARM 코어 점유율은 계속 높아지고 있는 중이다. PC와 서버용 프로세서 시장은 인텔의 ×86 아키텍처 칩이 장악하고 있지만 모바일과 IoT는 `ARM의 세상`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ARM의 지난해 매출은 15억달러 수준이다. 인텔 매출(553억달러)과 비교하면 36분의 1 수준으로 작다. 그러나 ARM이 반도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매출 수준을 크게 웃돈다. 대부분 반도체 업체가 ARM 기술을 사들여서 쓰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업체가 ARM을 인수하고 기술을 독점할 경우 반도체 생태계 전반에 큰 혼란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업계에선 종종 나왔다.
국내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소프트뱅크의 사업 포트폴리오로 보면 기술 독점 우려는 없어 보인다”며 “소프트뱅크는 그간 반도체 영역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소프트뱅크가 ARM 인수를 마무리한 뒤 일정 시간이 지나고 다른 기업, 특히 중국 쪽에 회사를 매각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소프트뱅크는 크고 작은 인수합병(M&A)을 성사시킨 뒤 일정 부분 기업을 키워 되파는 형태로 덩치를 불려왔다”며 “ARM을 사들인 뒤 기술을 독점할 수 있는 국가, 혹은 기업에 되판다면 세계 반도체 생태계가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ARM을 인수한 소프트뱅크가 추후 사업을 견실하게 이어나가려면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고 전문가는 설명했다.
17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 등 주요 외신은 소프트뱅크가 영국 반도체칩 설계회사 ARM홀딩스를 234억파운드(35조3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소프트뱅크는 ARM주당 17파운드를 매겼다. 이는 지난 주말 종가에서 43% 프리미엄이 추가된 금액이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