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 유해물질 사용 실태 및 인증체계 종합점검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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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가전제품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되는 사태가 잇따르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이나 업계의 자성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사건이 알려지면 그때그때 대응하는 `임기응변식` 대처와 뒤늦게 대책을 논의하는 `사후약방문`식 대처로는 가전업계 전반에 대한 소비자 신뢰도만 떨어트린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가전제품 전반에 걸친 유해물질 사용 실태를 살펴보고 인증과 사후점검 등 관리체계도 종합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무도 모르는 유해물질

가전제품에 사용된 유해 화학물질이나 중금속은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 정부와 소비자 누구도 알지 못한다. 코웨이 얼음정수기의 중금속 검출 사태에서 보듯 융·복합 정수기는 시험과 관리감독 기관이 제각각이다. 정부는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정수기는 환경부 `먹는물 관리법`에 의거, 수질 관리를 받는다. 하지만 융·복합 기기로 분류되는 스파클링(탄산수) 정수기나 얼음정수기 등은 식품의약품안전처 소관이다. 인증 및 관리 기관이 다르지만 기관 간 업무 협조는 원활하지 않다. 사태가 터지면 관련 기관들이 `폭탄 돌리기` 식으로 책임 회피에 나서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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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프달옥시대표가 옥시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기업, 사회 책임 강화해야

유일하게 유해성을 알 수 있는 곳은 기업이다. 자사 제품에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성분 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옥시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인체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검찰 조사 결과 속속 나온다. 정수기에서 중금속이 검출된 코웨이 역시 해당 사실을 알고 있었다. 코웨이는 소비자에게 사실을 알리는 대신 자체 점검과 교환 등을 실시했다.

대부분 제조사는 자사에 유리한 인증 정보나 기능에만 초점을 맞춰 홍보한다. 이 때문에 소비자는 제한된 정보만을 얻는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유해 화학물질에 대해 예민해진 소비자 우려를 해소하면서 소비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에는 특정 유해물질 섭취와 관련한 유해성 기준이 없어서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의 기준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면서 “가전 기업에서는 국내에 굳이 없는 기준을 알아서 조사해 공시할 필요성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화장품 업계의 경우를 참고할 수 있다. 식약처는 2008년 10월부터 `화장품 전성분 표시제`를 시행했다. 소비자의 알 권리와 화장품 사용으로 인한 안전성 확대를 위해서다. 제도에 따라 각 업체는 화장품 용기나 포장지에 제조 성분, 유통 기한 등을 명시하고 있다.

◇정부 전문성 키워야

무엇보다 정부 차원에서 유해 화학물질을 종합 관리하기 위해 제도를 보완하고 감독을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우리나라는 화학물질 사용에 대한 기준을 세워 놓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화학물질이 제품에 사용됐을 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제대로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않는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만 하더라도 흡입 독성 가능성을 간과한 채 제품을 승인한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우선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 단순히 화학물질이나 중금속 사용량 규정에 그칠 것이 아니라 흡입, 접촉, 음용 등 다양한 경우에 대한 세밀한 기준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화학물질 또는 전자제품 인증을 담당하는 관료들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화학물질과 독성물질에 대한 기준은 우리나라도 선진국 수준으로 갖춰져 있다”면서 “하지만 각 제품에 적용시 인체 영향 등을 다각도로 검증하는 절차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학교에서는 학문 간 칸막이가 높고 부처에서는 부처 간 칸막이가 있어 종합 점검이 되지 않는다”면서 “융·복합 기기는 느는데 전기, 전자, 화학 등 한 분야만 전공한 관료가 담당하니 종합해서 보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권건호 전자산업 전문기자 wingh1@etnews.com,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