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다단계 판매 피해가 확산되면서 국회와 정부, 지방자치단체가 대응에 나섰다. 국회는 LG유플러스가 휴대폰을 다단계로 판매하면서 방문판매법(방판법) 외에도 공정거래법 등을 위반하지 않았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련 문제는 9월 국정감사에서 중점 다뤄진다. 공정위는 국회 지적을 반영, 문제를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서울시도 하반기에 휴대폰 부문을 포함, 다단계 업체에 대한 현장 점검에 나선다.
업계는 그동안 정부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쳤다며 관련 부처가 경찰, 검찰과 면밀히 조사해서 위법 발견 시 엄벌하고, 동시에 실효성 있는 관련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 `합법`으로 서민의 돈을 뜯어 가는 문제의 해결책도 마련할 것을 강조했다.
◇국회·정부·지자체 대응 움직임 본격화
새로 구성된 20대 국회가 LG유플러스의 휴대폰 다단계 판매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8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LG유플러스 휴대폰 다단계 판매 문제를 지적했다. 김 의원은 “LG유플러스가 주축이 된 다단계 판매와 관련해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는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내렸고, 공정위는 방판법 위반으로 제재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방판법 외 공정거래법 등 위반 사항은 없는지 살펴봤는가”라고 추궁했다. 정재찬 공정위원장은 신고에 따라 점검했기 때문에 다른 법 위반 사항은 살펴보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김 의원이 LG유플러스가 다단계 판매를 통해 LG전자 구형 휴대폰을 `밀어내기`로 판매한 게 아니냐며 공정위가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하자 정 위원장은 “모니터링하겠다”고 답변했다. 김 의원은 관련 문제를 면밀히 점검, 9월 국정감사에서 다시 다룰 계획이다.
`밀어내기` 의혹은 19대 국회 때도 지적됐다. 전병헌 전 의원(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LG유플러스가 다단계 대리점을 통해 LG전자의 구형 스마트폰을 `밀어내기` 식으로 판매한 정황이 파악됐다”고 지적했다. 후속 조치와 관련,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위원장이 모니터링하겠다고 국회에 밝힌 만큼 다시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방판법 위반보다 공정거래법, 표시광고법 등 다른 법 위반 여부에 무게를 둘 것으로 보인다. 시정 명령을 내린 방판법 위반 건은 소송이 진행되고 있어 다소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LG유플러스 휴대폰을 판매하는 IFCI, NEXT, 아이원은 공정위의 시정명령이 부당하다며 서울고등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업체는 휴대폰 가격 산정 때 단말기 가격과 약정요금을 별개로 구분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서울시도 휴대폰 다단계 업체의 법 위반 여부와 관련, 현장 점검에 나선다. 서울시는 신고가 있을 때 수시로 다단계 업체를 점검하는 한편 매년 상·하반기 정기로 현장 점검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는 상반기에 40개 다단계 업체를 점검, 12개 업체에 과태료를 부과하고 2개 업체에 대해서는 수사를 의뢰했다. 1개 업체에는 시정권고를 내렸다. 하지만 상반기 점검 때 휴대폰 다단계 업체는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점검 당시 공정위가 방판법 위반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정위의 판단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상반기에는 휴대폰 다단계 업체를 점검하지 않았다”면서 “하반기에 조사 계획이 있다”고 해명했다.
◇면밀한 점검·처벌 시급…법 개정 함께 추진해야
그동안 정부의 제재가 너무 약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최근 방통위, 공정위가 휴대폰 다단계 업체에 내린 처벌은 유독 수위가 낮았다.
방통위는 지난해 9월 휴대폰 다단계 판매로 전기통신사업법,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을 위반한 LG유플러스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23억7200만원 과징금을 부과했다. 7개 다단계 업체에는 각 100만~250만원 과태료를 부과했을 뿐이다.
공정위도 4개 휴대폰 다단계 판매 업체에 “앞으로는 160만원을 초과하는 휴대폰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시정명령을 내리는데 그쳤다. NEXT와 아이원에는 각각 300만원 과태료를 물렸다. 이는 가격 제한 초과가 아닌 후원수당 산정 및 지급 기준 변경 사항 미신고, 미통지 행위 때문이다. 업계는 방통위, 공정위가 적극 나설 것을 주문했다. 다단계가 결국 `사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관계 부처가 지자체, 경찰, 검찰과 함께 합동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허위·과장 광고 제재도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휴대폰 다단계 업체들은 현장 설명회, 인터넷 동영상 등을 통해 “단기간에 큰돈을 벌 수 있다”며 판매원의 가입을 유혹하고 있다. 본지가 취재한 대전의 조 모 할머니가 IFCI 판매원이 된 것도 결국 “골드가 되면 월 100만~150만원을 벌 수 있다”는 달콤한 속삭임 때문이었다. 지금도 유튜브에는 그럴듯한 논리로 휴대폰 판매원을 모집하는 동영상이 넘쳐난다.
법 개정이 뒷받침돼야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방판법, 단통법, 전기통신사업법 등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법의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휴대폰 다단계 판매는 상당 부분이 합법 틀 안에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휴대폰을 다단계 방식으로 판매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방통위 상임위원 일부도 이동통신과 다단계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방판법 개정으로는 휴대폰 다단계 판매를 막는 게 사실상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방판법은 특정 상품의 다단계 판매를 제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단통법 등에서 휴대폰 판매 방식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방판법 위반 사안이라 하더라도 다른 법률을 적용, 휴대폰 다단계 업체를 측면 지원하는 이동통신사를 제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휴대폰 다단계 판매로 결국 수익을 얻는 것은 이동통신사지만 법 위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법적 책임에서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의 공정위 시정명령도 다단계 업체에만 적용했을 뿐 LG유플러스는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한 유통 전문가는 “책임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이동통신사를 제재할 필요도 있다”면서 “방판법에도 `소비자에게 유리한 경우 방문판매법에 우선해 다른 법률을 적용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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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