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24> 역할 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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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0년 일본 오케하자마 전투,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전사한다. 마쓰다이라 가신단은 겨우 독립한다. 2년 후 성을 도쿠가와로 고치고 오다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는다. 스루가, 도토미, 가이, 시나노, 미카와 등 5개국을 손에 넣는다. 이즈음 장남 노부야스가 노부나가의 오해를 받는다. 사위 노부야스를 자살시키라고 한다.

그 후 20여년이 흘러 1600년에 이에야스는 세키가하라에서 이시다 미쓰나리와 천하를 다툰다. 3남 히데타다에게 정예 3만 8000명을 맡긴다. 자신과는 다른 길로 진군해 세키가하라에서 만나기로 했다. 전투가 끝날 때까지 도착하지 못한다. 자살을 명해도 지나칠 것이 없었다. 이미 한 아들을 원치 않게 잃은 이에야스는 그럴 수 없었다. 나중에 자신의 자리를 넘긴다.

야마오카 소이치는 그의 연재소설에 다른 얘기를 남긴다. 히데타다에게는 노련한 가신들을 붙여 두었고, 서툰 실수가 아니라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다고. 어느 쪽 얘기가 맞던 이에야스는 가업을 보존하고자 했다, 가족을 편애한다는 가신들의 의구심도 피하면서.

클라우디오 페르난데스 아라오스와 동료들은 가장 성공한 기업들 가운데 상당수가 가족기업이라고 한다. S&P 500 기업의 3분의 1, 프랑스와 독일 250대 기업의 40%, 아시아와 남미 대기업 60%가 가족기업에 든다.

수성은 쉽지 않다. 30%만 2세대로 넘어가고 3대 기업은 12%, 4대를 넘기는 경우는 3%뿐이다. 전문가들은 가족경영이 일반기업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한다. 가족기업에서의 결정은 기업뿐만 아니라 가족 관계 자체가 된다. “통상 해고를 당하면 마음은 상하겠지만 다른 직장을 찾아 훌훌 털어 낼 수 있겠지요. 하지만 가족에게 해고되는 것이란 거기서 쫓겨나는 것과 같지요.”

성공한 가족기업의 특징은 무엇일까. 그들이 지키는 원칙은 무엇일까.

캐서린 오하라는 “가족기업에서 전문가답게 일하기(Keeping It Professional When You Work in a Family Business)”란 제목의 기고문에서 두 가지 사례를 든다. 토니 보주토는 음반 사업에서 재미를 보지 못한다. 가업에 참여하겠다고 한다. 세 가지 조건이 주어진다. 첫째 다른 사람 밑에서 먼저 일해 볼 것, 둘째 관련 석사 학위를 딸 것, 셋째 제일 밑바닥에서 시작할 것. 2001년 입사해서 2013년에 사장이 된다. 그 사이 몇 가지 원칙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직장에서 가족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해야 한다면 다른 곳에서 하지요.”

다른 사례도 있다. 테디 윈스럽은 형 베이야드의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고 한다. “형으로서 이것이 좋은 경험이 되기 바라. 하지만 고용주로서는 일을 잘해 주면 좋겠어.” 몇 년 후 에드워드 필드라는 회사를 설립한다. 아이폰 지갑을 디자인했고, 킥스타터에서 3만2272달러를 모은다. “시작할 때부터 세상을 둘로 나누었습니다. 가족과 직장이었죠.”

성공한 가족기업을 살펴본 후 조시 배런, 롭 라케나워, 세바스찬 에른버그 같은 전문가들은 이것을 `역할 나누기`라 부른다. 오너, 이사회, 경영진과 가족이란 역할로 나누고 의사결정을 구분하라고 한다. 성공한 가족경영시스템은 문제를 적당한 의사결정의 공간에 전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구성원은 공간마다 주어진 역할에 맞춰 행동해야 한다.

아라오스가 찾은 성공의 조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성공기업은 가족과 기업을 어느 정도 떼어놓고 있었고, 그것이 가족 구성원이든 직원이든 전통에 맞는 경영진을 찾아냈다. 승계 절차를 만들고 지켰으며, 무엇보다 기업 정체성의 전형과 같은 모습으로 구심점이 되는 누군가가 있었다. 아라오스는 이것을 가족 구심(family gravity)이라고 불렀다.

이에야스는 큰 실수가 있었지만 가업을 히데타다에게 넘겼다. 종가 외 각 가문을 여러 지역에 분봉했다. 8대 쇼군은 기슈 가, 마지막 쇼군은 미토 가에서 각각 나왔다. 도쿠가와의 영화가 위태로운 가운데에도 250년 동안 이어진 것은 이런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저자가 말하고자 한 것도 가족기업처럼 복잡한 관계 속에 있을 때 어떻게 의사결정을 할 것인가이다. 의사결정의 공간을 나눔으로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역할 나누기는 그래서 흥미로운 제안이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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