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직장이 몰린 서울 도심과 판교를 구분 짓는 패션 코드가 있다. 바로 반바지와 슬리퍼다. 반바지와 슬리퍼가 판교를 대표하는 드레스코드로 자리 잡았다.
판교에 입주한 정보기술(IT) 기업 다수가 자율복장을 채택하면서 오전과 점심시간이면 반팔에 반바지, 샌들이나 슬리퍼를 신은 직장인이 흔한 풍경이 됐다.
자율복장을 채택한 곳은 엔씨소프트, 넥슨, NHN엔터테인먼트, 네오위즈게임즈, 스마일게이트, 카카오 등 게임·인터넷 업체가 가장 먼저다. 이들 회사 입구에 들어서는 직원 복장을 보면 청바지는 기본이다. 여름에 남녀를 불문하고 반바지에 샌들이나 슬리퍼를 신은 직원이 흔하다.
황현돈 NHN엔터테인먼트 홍보팀 차장은 “인터넷 회사 특성상 개발자가 직원 다수를 차지하는데 대부분 내부에서 일하는 일이 많아 복장에 있어 최대한 자유와 개성을 존중하는 편”이라며 “여름이면 반바지와 슬리퍼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황 차장은 “업무 특성에 따라 복장을 자율적으로 입다보니 대외 업무 파트는 간편한 세미정장을 입는다”고 덧붙였다.
반바지 차림 직원은 대중교통보다 자가용이나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쪽이다. 다른 사람 눈을 의식해야 하는 대중교통보다 자가 운전 수단을 선호하는 것이다.
정성열 카카오 홍보 파트장은 “연구개발 인력 대부분은 하루 종일 컴퓨터에 매달려있는 사례가 많다”며 “자연스럽게 개성 넘치는 자유스러운 복장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반바지와 샌들로 대표되는 판교 코드가 직원 창의성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견해도 펼쳤다. 정 파트장은 “게임이나 인터넷 서비스 개발은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가 필수적인데 아무래도 복장을 규제하는 것은 사고를 경직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율복장을 하는 곳은 게임 회사만이 아니다. SK플래닛과 SK(주)C&C 등 대기업 계열사도 일찌감치 자율복장에 동참했다. 대기업 직원은 대외 관계가 많고 직장 내 수직 관계가 뚜렷하다는 인식을 깼다.
주재율 SK플래닛 매니저는 “SK플래닛은 지난 2012년이후 자율복장을 지켜왔다”며 “몇 해 전에는 여름 `바캉스 룩 데이`를 만들어 직원 모두 해변에서나 볼 수 있는 복장으로 출근한 일도 있다”고 전했다.
판교에 반바지와 슬리퍼가 패션 코드로 자리 잡은 데는 판교 지역 직장인 다수가 젊은 연구개발인력인 것도 작용했다.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판교테크노밸리에 근무하는 직장인은 7만2800명으로 이 가운데 1만6800명이 연구개발 인력이다. 네 명 중 한 명이 연구개발인력인 셈이다. 또 20~30대 비중이 72%로 젊은 층이 많은 것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는 배경으로 꼽힌다.
이경민 성장기업부(판교)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