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이직과 영업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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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기에는 많은 이직자가 생긴다. 구조조정과 같은 타의에 의해서든 안정된 직업을 찾고자 하는 자의에 의해서든 인력 이동은 빈번하게 이뤄진다.

퇴사와 입사 과정에서 자주 분쟁의 소지가 되는 것이 영업비밀 문제다. 전 직장의 영업비밀을 갖고 경쟁사로 이직했다며 법정 공방을 벌이는 경우를 흔히 접한다.

한솥밥을 먹던 식구들과 얼굴을 붉혀야 했나 싶지만 이유를 생각해 보면 수년 동안 힘들게 축적한 핵심 정보가 경쟁사로 흘러가는 상황을 가만히 손 놓고 있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업비밀 유출 우려로 소송을 제기할 때 흔히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회사의 중요 정보라고 해도 언제나 영업비밀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행 법률에서 정의하는 영업비밀은 `외부에 공공연하게 알려지지 않고, 독립된 경제 가치를 지닌 것으로서 보유자가 해당 정보를 상당한 노력에 의해 비밀로 관리하고 있는 정보`다. 이를 비공지성, 경제적 유용성, 비밀관리성이라고 한다. 영업비밀은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때 법의 보호를 받는다. 반대로 어느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는 경우에는 영업비밀이 될 수 없다.

실제 비밀로 관리하지 않아 보호를 받지 못한 경우가 최근 있었다. 지난 2013년 6월 반도체 장비 업체에서 일하던 한 직원이 퇴사하면서 장비 도면 등이 담긴 파일을 반납하지 않고 경쟁 업체로 이직해 기소됐다. 하지만 법원은 회사가 해당 파일에 비밀이라고 인식될 수 있는 표식을 하거나 고지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무엇이 영업비밀인지 규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책임을 묻는 건 어불성설과 같기 때문이다.

이직에 따른 영업비밀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원칙과 기준이 명확할 필요가 있다. 또 기업체 스스로도 비밀로 관리하지 않는 정보는 법에 의해서도 보호받지 못한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동시에 이직하는 사람은 최대한 빈손으로 나오는 것이 좋다. 전 직장의 서류가 빌미가 돼 법정에 서는 일이 현실에선 비일비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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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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