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을 실감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8일 정연만 전 환경부 차관 이임식에서다. 33년 3개월. 정 전 차관이 공직에 복무한 기간이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공직에 입문해 쉼 없이 달려온 그가 차관을 마지막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내려놓았다. “인생 자체가 공무원이었고 환경부는 내 젊음의 전부”라고 했을 때 이임식장 분위기는 숙연해졌고 “공무원은 내가 살아온 이유이자 내 삶의 목적 그 자체”라고 했을 때 뜨거워진 눈시울을 훔치는 광경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정 전 차관이 차관으로 재직한 3년3개월 동안 국회 통과한 법안은 147개에 이르고 이 가운데 45개가 정부입법이다. 제정안과 개정안을 합한 숫자지만 3년여 짧은 기간에 처리하기엔 결코 적지 않다. 그는 “제가 업무에 애정이 많아 상대적으로 함께 근무한 직원은 굉장히 힘든 세월을 보내지 않았나 생각하지만 그런 땀과 노력이 쌓여서 오늘 환경부 역사를 만들었지 않나 생각한다”며 소회를 밝혔다.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정 전 차관이 좋아하는 싯구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난행(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에 나오는 부분이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말라. 오늘 내가 걷는 이 길은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된다`는 뜻이다. 정 전 차관은 “과장급 보직 9, 10개에 국장급 보직 7개를 두루 거치다보니 이것저것 괜히 깊이도 모르면서 여러분을 괴롭혀드리지 않았나 생각하지만 내가 욕심이 많아서 그랬던 것 아닌가 싶다”며 “내 뒤에 오는 우리 후배님들에게 조금이라도 밑거름이 됐으면 하는 조바심에서 그랬다고 생각해주셨으면 한다”며 싯구를 읊조렸다. 그는 “내가 혹시 갈짓자로 걸어갔을지라도 여러분은 바르게 걸어가시고 제가 바르게 걸어갔다면 더욱더 넓고 탄탄하고 곧게 만들어 좋은 환경부가 되고 가정적으로도 행복한 식구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환경부 가족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차에 오르는 순간, 북받치는 감정을 애써 누르는 정 전 차관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주문정 산업경제(세종) 전문기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