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21> 한계를 넓히다

Photo Image

다키아(Dacia). 다뉴브강 북안에서 카르파티아 산맥 사이의 땅이다. 서기 69년, 베스파시아누스가 내전을 종식시키고 황제에 오른다. 플라비우스 왕조가 개창된다. 후계자 가운데 현제라 불린 트라야누스가 있었다. 이 시기에 로마 최전선이 다키아였다. 트라야누스는 두 차례 원정 끝에 이 땅을 제국의 속주로 편입시킨다. 이후 이곳은 `로마인 땅`으로 불리게 된다. 다키아에서 티그리스까지, 이것이 로마 역사 최대의 강역이었다.

루마니아 자동차 메이커 다치아(Dacia)의 사명도 여기서 왔다. 1999년 르노가 인수한 다치아는 2004년 로간을 선보인다. 가격은 5000유로에 맞췄다. 동유럽 시장에 맞춘 검박형 제품이었다. 4도어 소형차로 시작했다. 하지만 곧 해치백, 미니밴, 픽업, 2도어 쿠페에다 MCV로 불리는 다목적 버전까지 만들어진다. 모로코, 브라질, 터키, 러시아, 콜롬비아, 이란, 인디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생산된다. 아프리오, 베리토, 톤다, 심볼, 라르구스, NP200 같은 다른 이름까지 얻는다.

품질(quality)과 저렴함(affordability) 두 가지를 한데 묶는다. 루이 슈베제르 르노 최고경영자(CEO)가 쇼룸에서 먼지가 쌓여 가고 있던 1만2000유로짜리 르노를 본 지 7년 만이었다. 슈베제르 회장은 1990년 말 러시아를 찾는다. 6000유로짜리 구닥다리 러시아제 라다는 잘 팔리고 있었다. 현실은 충격이었다. “신제품이란 이유로 6000유로로 좋은 차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은 핑계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버려도 좋습니다. 하지만 세련되면서도(modern) 신뢰할 만한 품질로(reliable), 무엇보다 소비자가 구입할 수 있어야 한다(affordable)는 세 가지 조건만은 지켜야 합니다.” 여기에 다치아 브랜드가 달린다. 다치아란 이름이 역사 전면에 다시 선다. 혁신의 상징으로.

2010년 한 기고문에서 나비 라드주, 자이데프 프라부, 시몬 아후자 세 사람은 이것을 힌두어 `주가드(Jugaad)`를 빌어 설명한다. “제한된 자원으로 가혹한 여건을 극복해 내는 것.”

전력망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4억명이 거주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셀코(SELCO) 창업자 하리슈 한데(Harish Hande)는 버려진 수요를 본다. 시골 산파들은 등유 램프가 산모와 아기 건강을 해친다고 생각했다. 채소 판매상에게 정전은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전력선을 깔 수가 없지 않은가. 셀코는 14만대가 넘는 모듈식 태양광 조명 시스템을 팔았다. 인도에는 8억7000만명이 휴대폰을 가졌다. 하지만 6억명은 은행 계좌가 없다. 송금을 원하는 많은 수요가 있었다. 단지 지점을 두기에는 너무 넓은 공간에 흩어져 있다.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예스뱅크(YES Bank)는 계좌가 없다 하더라도 휴대폰에서 송금할 수 있도록 했다.

주가드 방식은 모든 것이 부족한 곳에서 탄생했다. 그 자체가 삶에 스며들어 있는 제약을 극복하고 곤경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이기도 했다. 8억명이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6억명이 은행 계좌가 없으며, 4억명이 전력망이 없는 곳에 살고 있었다. 대부분의 기업은 자사 제품을 구입하기 어려운 이들 한계소비자를 채산이 맞지 않다고 보았다. 하지만 예스뱅크나 셀코는 이들을 끌어안는 방식을 고안했고, 놀랍게도 경계에 있던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수익을 냈다. 이들 창의 기업가는 충족할 수 없는 수요와 시장의 경계선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고, 한계를 넓히며 사업을 확장했다.

상식은 우리에게 `더 많은 기능은 더 높은 가격으로`라고 가르쳐 왔다. 새로운 기능은 항상 더 높은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부과됐다. 하지만 조금 다른 선택을 한 다치아는 지금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자동차 브랜드가 됐다.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시장을 찾는다면서 주변에 버려 둔 수요는 없었는지. 외면한 시장은 없는지. 다치아가 버려진 땅인 것처럼 루이 슈베제르나 하리슈 한데가 찾은 것도 버려진 시장이었다. 2010년 기고문에서 세 저자는 주가드를 위한 네 가지 혁신 원칙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버려진 수요를 찾고 시장의 한계를 넓히라는 조언이다. 두 가지만 기억하자. 검박함(frugality)과 포용(inclusiveness). 주가드 방식은 화려함보다 검박함을 선택함으로써 소비자와 시장을 버리기보다 끌어안는 것으로 완성된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