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20> 생각을 뒤집다 (Reverse Innovation)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생각을 뒤집다 (Reverse Innovation)

2005년 1월 프록터앤드갬블은 질레트 인수를 발표한다. 인수대금은 약 60조원. 세계에서 가장 큰 생활용품 기업이 탄생한다. 긍정적 평가가 이어진다. “전략적이고 현명한 움직임” “프톡터앤드갬블은 여성 소비자를 알고, 질레트는 남성을 안다. 이제 이 둘은 하나다” “프록터앤드갬블이 매력적인 습식면도기 시장 진입에 성공했다.” 시장도 반긴다. 질레트 주가는 당일에만 13% 오른다. 프록터앤드갬블의 매출 전망도 1% 높아진다. 이날 대박을 터뜨린 명단에는 워런 버핏도 있었다. 6억달러를 투자한 버크셔 해서웨이는 7억달러를 투자 수익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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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레트의 새 주인 프록터앤드갬블은 인도 시장을 떠올린다. 실상 둘 다에게 인도 시장은 친숙한 곳이었다. 질레트는 면도기로 꽤나 많은 수익을 거둔 참이었다. 다만 고객은 부유층에 한정됐고, 4억명의 중산층은 남겨진 상태였다. 문제는 단순했다. 인도 남성 대부분은 질레트 면도기를 살만한 여유가 없었다. 주로 팔리는 양날 면도날은 하나에 1루피. 20원도 채 안 되는 그런 시장이었다.

통상의 제품으로는 수지를 맞출 수가 없었다. 아무리 비싸도 15루피에 맞춰야 했다. 이건 질레트를 대표하는 마하3 가격의 3%, 퓨전파워의 2% 수준이다. 수익을 남길 수 있을까? 의미 있는 노력인가? 하지만 그냥 둘 수도 없잖은가. 미래 소비자는 여기 있었다.

생각을 뒤집기로 한다. 이제껏 사용해 온 개발 원칙은 버려야 했다. 면도거품이나 젤, 크림은 사치였다. 수염은 더 두껍고, 빡빡했다. 면도날은 조금의 물로도 씻어 낼 수 있어야 했다. 실상 물 자체가 귀한 물건이었다. 마하3이나 퓨전파워 같은 환상적인 제품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이것저것 빼고 바꾸고 짜 맞추는 정도로 15루피에 맞출 수 없었다. 질레트 가드(Guard)는 이렇게 탄생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에이머스 윈터 교수와 다트머스대의 비제이 고빈다라잔 교수는 이머징 마켓에서 성공하려면 새로운 혁신 방식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첫째 기존 제품에 시장을 맞추려 해서는 안 된다. 트랙터 제조사인 존 디어는 인도에서 판매를 시작한 지 한참 후에야 자신의 소형 버전조차 회전 반경이 너무 크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예 새로 디자인하고서야 겨우 문제를 풀 수 있었다. 둘째 기능을 빼서 가격을 맞추려 하지 마라. 미국 자동차 빅3의 하나가 인도 시장에 들어가기로 했다. 적당한 모델이 필요하다. 기존 모델 가운데 마케팅팀에서 말하는 가격대 하나를 고른다. 가격을 낮추려 이것저것 들어낸다. 뒷좌석의 파워 윈도도 빼 버린다. 잠재 고객은 대부분 부유층이었고, 기사를 두고 있었다. 결과는 자명했다. 셋째 비상식의 자유로움을 활용하라. 우리 주변에서 손잡이를 저어 움직이는 휠체어를 보면 이상하겠다. 하지만 어떤 곳에서는 문제될 게 없었다. 자전거 기어와 체인을 쓴 탓에 수리도 쉬웠다. 개발도상국에서 흔한 것이 자전거 아니던가. 넷째 신흥시장이 주는 제약을 즐겨라. 제약은 새로운 방식을 찾게 하고, 글로벌 승자가 될 수 있다. 르노는 2004년 6500달러짜리 로간으로 루마니아에 들어간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부품 수를 줄였고, 현지에서 조립했다. 몇 년이 지난 후 로간을 프랑스와 독일로 가져온다. 디자인도 좀 바꾸고, 안전성이며 도색도 손을 본다. 2013년 서유럽 판매는 43만대까지 치솟는다.

두 교수는 이 방식을 `되먹임 방식(Reverse Innovation)`이라 부른다. 핵심은 100% 기능을 10% 비용으로 만드는 것에 있었다. 일견 상식에서 벗어난다. 저가 제품이란 실상 기능은 적고 디자인은 처지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이렇게까지 하고 남는 것이 있을까?

놀랍게도 인도에서 팔리는 면도기 3개 가운데 2개는 질레트 가드다. 막대 달린 휠체어는 미국 시장을 준비하고 있다. 로간, 가드, 막대 휠체어까지 모두 개도국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탄생했다. 하지만 이 혁신은 낮은 시장에서 잘사는 시장, 저가 시장에서 고급품 시장으로 되먹여 돌아온다.

10% 비용으로 100% 기능을 전달하는 것은 어려운 목표다. 하지만 의외의 혁신으로 유도한다. 게다가 카를로스 곤 르노 회장이 `검박형 엔지니어링(frugal engineering)`이라고 부른 이것은 우리를 `와해성`이라는 오묘한 세계로 인도한다. 여기에 되먹임 방식의 매력이 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윤대원 SW콘텐츠부 데스크 yun1972@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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