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청이 특허무효심판 단계에서 증거를 모두 제출토록 강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특허 무효성을 가릴 때 특허심판원에 제출하지 않은 증거가 법원 단계에서 등장해 심판원 심결이 뒤집혀 분쟁이 장기화된다는 판단에서다. 특허법원은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특허청 "무효심판에 모든 증거 제출해야"
류동현 특허청 심판정책과장은 25일 서울 리츠칼튼 호텔에서 열린 `2016 지식재산 국제 콘퍼런스`에서 이런 내용을 포함한 `무효심판·소송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류 과장은 특허무효 심판·소송과 관련해 "법원 단계에서 새로운 무효증거 제출을 허용해 특허무효 분쟁이 심판에서 끝나지 않고 소송으로 이어진다"며 "이 때문에 분쟁이 장기화하고 예측가능성이 떨어져 불복률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제 특허심판원 심결에는 소극적으로 임하고 법원에서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며 `승부`를 가리려는 업체가 많다"고 밝혔다. 특허청 자료를 보면 지난 2014년과 2015년 심판원이 유효라고 판단한 특허가 법원에서 뒤집힌 비율은 각각 68.1%, 43.4%다.
류 과장은 "미국은 2012년 특허법 개정으로 당사자계 특허무효심판(IPR)을 도입해 특허심판원에 모든 증거를 제출토록 했다"며 "우리도 미국처럼 법원에서 새로운 증거 제출을 제한하면 신속한 분쟁 해결과 비용 절감이 가능하고 예측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또 "새로운 증거 제시가 필요할 경우 법원 단계에서 예외적으로 허용하거나 중복 심판을 허용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특허법원 "법 체계와 문화 고려한 심도 있는 고민 필요"
특허법원은 법적 안정성과 법률 문화 등을 근거로 반대 입장을 표했다.
장현진 특허법원 판사는 특허청 제안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가정에 불과하고 또 다른 불편을 가져올 수 있어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장 판사는 "법원 단계에서 새롭게 발견한 선행기술을 증거로 제출할 수 없도록 제한하면 당사자는 다시 특허심판원에 특허무효심판을 제기할 가능성이 커서 분쟁이 오히려 지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침해소송은 증거 제출 제한이 없는데 심결취소소송만 새 증거 제출을 제한하면 침해소송과 불균형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장 판사는 "미국은 특허소송에 많은 비용이 소요돼 여러 제도를 활용하려는 수요가 없지만 한국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결론을 얻으려는 정서가 강해 특허청 주장이 실효성이 있을지는 깊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특허심판원 심결 이후 법원 단계에서 새로운 증거가 제출된 비율은 10%에 불과하다"며 "새 제도 도입을 고려할 때는 국가의 법 체계와 법률 문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콘퍼런스는 `특허심판·소송의 조화와 협력`을 주제로 특허무효 심판·소송제도와 관련한 한국과 미국, 일본 등 3개국 동향과 사례를 공유해 개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특허청이 마련했다. 오전 기조연설 발표 후 오후에는 세션1과 세션2를 차례로 진행했다. 세션1에서는 각국 특허무효 심판제도를, 세션2에서는 국가별 특허무효 소송 이슈와 판례·심리 기준을 소개했다.
행사에는 최동규 특허청장과 원혜영 더민주 의원, 이대경 특허법원장, 시타라 류이치 일본 지적재산고등재판소장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최 청장은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분쟁을 신속하고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특허쟁송제도가 필요하다”며 “특허무효 심판·소송제도 개선방안을 도출하고 특허청과 특허법원이 조화와 협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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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종 기자 gjg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