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계에선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를 놓고 대만이 자주 언급된다. 대만은 과거 건식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을 건설하려다 진행 과정에서 정책 불신과 지방자치단체의 반대로 좌절됐다. 이후 해외 위탁 처리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관련 입찰이 취소되면서 위기를 겪었다. 사업성도 문제였지만 대만에서 사용한 핵연료가 처리 지역까지 이동하는 동안 지나가는 경유 국가들의 동의를 얻는 것도 어려웠다. 결국 대만은 일부 원전 폐로를 결정했다.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3년 뒤면 월성을 시작으로 각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 포화시점이 도래한다. 사용후핵연료를 처분할 곳이 없어 원전 가동 중지를 고민해야 할 정도다. 이런 점에서 지금에라도 사용후핵연료 관리 기본계획을 마련한 것에 박수를 보낸다. 조금 늦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도 손대려 하지 않은 뜨거운 감자를 냄비에서 꺼낸 것 자체만으로도 칭찬받을 일이다.
그동안 원자력계는 우리 원자력 산업을 반쪽으로 평가했다. 건설과 발전은 잘하면서도 폐기하는 일은 한 번도 밟아 보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다. 지금 세대라는 이유로 원전이 주는 과실의 달콤한 과육만 짜 먹고 껍데기 문제는 방치해 온 셈이다. 이제는 스스로 책임져야 할 때다. 다행스럽게도 그 책임엔 희망도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용기에 보관하고 이를 이동시키고 지하 깊은 곳에 처분하는 과정에는 상당한 기술이 들어간다. 그리고 이 경험은 원전 선진국도 그리 많지 않다. 원전 해체와 마찬가지로 핵연료 처분도 새로운 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많은 국가가 사용후핵연료 주기와 저장 기술 개발을 위한 노력과 함께 벤치마킹을 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부담이 아닌 새로운 성장 기회로 활용한다면 우리는 그동안의 반쪽짜리 원자력 기술 경험에 화룡점정할 수 있다. 수출산업화라는 결실을 따낼 수 있다. 이제 출발선에 선 사용후핵연료 관리 기본계획이 용의 눈이 되길 기대해 본다.
조정형 에너지 전문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