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는 `우선권 주장`이 가능합니다. 이미 출원한 특허도 일정 기간 내에 보완하면 출원일을 처음 날짜로 소급해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한편 출원일보다 앞선 시점에 해당 기술이 다른 문헌에 등장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특허권은 박탈될 수 있습니다. `신규성`이 사라지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우선권 주장을 인정받은 특허(A)보다 늦게 출원한 특허(B)의 우선권 주장 날짜가 특허(A)의 우선출원일보다 이른 경우는 어떨까요. 대신 특허(B)의 우선권 서류 내용은 관련 기술을 `암시`한다는 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원고, `우선권 주장`으로 특허 무효화 시도
사건은 지난 2009년 독일에서 시작됩니다. 소위 `자외선 불감성` 사건에서 원고는 피고의 특허(A)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며 자신이 출원한 특허(B)의 우선권 주장을 요청합니다. 우선출원일을 인정받으면 피고 특허(A)의 신규성을 부정할 수 있습니다.
인쇄판과 고무 롤러를 사용하는 오프셋 인쇄기용 `자외선 불감성 평판 인쇄 플레이트` 제조법 특허 기술이 특허(B)의 우선권 서류에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자료 속 조성물이 해당 기술을 실시한 결과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업계 종사자가 해당 자료를 보면 쉽게 기술을 파악할 수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습니다.
반면 피고는 원고가 제출한 우선권 자료에는 특허(A) 관련 기술이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았다며 우선권 주장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맞섭니다. 자사 특허가 무효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피고는 원고가 제시한 특허(B)의 우선권 문서에 일부 공정이 포함됐지만 불분명한 부분이 많아 같은 기술로 보기 어렵다고 항변했습니다.
1심에서는 원고가 웃었습니다. 법원이 원고가 제출한 특허(B)의 우선권 증명서류가 해당 기술을 직접 표현하지 않았지만 두 기술 사이 개연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우선권을 주장하는 서류 속 기술이 선출원의 특허청구범위에 기재돼 있지 않아도 기술 특징이 서류 전체에 구체적으로 나타나면 우선권 주장을 인정한다`는 유럽특허조약 88조를 폭넓게 인용한 결과였습니다.
◇피고, 항소·상고심서 역전승
하지만 항소법원 판단은 달랐습니다. 특허 기술이 우선권 서류에 있다지만 전체 기술의 일부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당시 업계 종사자가 수차례 실시한 뒤에야 특징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이 불분명하다고 결론내렸습니다.
대법원도 지난 2012년 항소법원과 같은 판결을 내립니다. 대법원은 여기에 `기술 동일성 여부를 판단할 때는 우선권 주장이 신규성 판단보다 엄격해야 한다`는 내용도 추가했습니다. 권리를 이미 부여한 특허의 신규성을 부정하려면 증거로 제시한 선행문헌 내용이 직접적이고 명확할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죠.
이번 판결의 시사점은 두 가지입니다. 우선권을 주장하려면 제출 서류가 모든 기술을 명시적으로 포함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업계 종사자가 해당 문헌에서 발명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또 기술의 동일성 여부를 판단할 때 신규성보다 우선권 주장 기준이 더 엄격하다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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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종 IP노믹스 기자 gjg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