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높이 23.5㎝, 직경 8.35㎝인 원통입니다. 이것은 음성으로 조종됩니다. 음악은 뭐든 말만 하세요. 질문에 답하고, 오디오북을 읽어 주고, 뉴스·날씨·교통 정보는 물론 스포츠경기 일정과 점수도 알려 주지요. 이것은 무엇일까요?”
작은 보온병만한 이것은 아마존에서 만든 에코(Echo)다. `스타트랙`이라는 영화를 본 적 있는가. 아니면 어떤 공상과학(SF) 영화도 좋다. 아침에 잠을 깨는 장면에는 으레 “오늘 내 일정이 뭐지?”와 함께 시작한다. 에코도 마찬가지다. “알렉사(Alexa), 오늘 중요한 약속이 뭐지?” “오늘 날씨는 어때?” “20분 후에 알려 줘!” “프라임 뮤직에서 아델(Adele)의 `롤링 인 더 딥`을 찾아 틀어 주겠어?” “알렉사, 휴지가 떨어진 것 같아. 주문해 줘”도 당연히 가능하다.
아마존 뮤직, 프라임 뮤직, 스포티파이, 판도라, 튠인에 있는 음악을 틀어 주는 정도는 기본이다. 우버, 도미노피자, 파라마운트, 에이오엘(AOL), 허핑턴 포스트, 캠벨 키친, 스텁허브, 가라지오, 모지오, 나스닥, 택시, 먹거리, 영화, 뉴스, 요리, 공연, 운전, 차고와 자동차 관리까지 생활의 웬만한 것이 가능하다. 거기다 갈수록 똑똑해지는 녀석이다. 새 제품이 연결될 때마다 스킬(skill)이라 부르는 기능이 늘어난다. 스위치, 조명, 센서, 콘센트, 허브, 적당한 스마트 가전이면 문제가 없다.
스마트폰과 네모난 터치스크린이 대세인 시절에 실린더형 몸체에 모니터라곤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을 작동시키는 방법은 `말하는 것`뿐이다. 제품이 출시되자 조롱거리가 된다. 아마존 파이어라는 휴대폰이 대실패한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쓸모없는 물건” “아마존의 전체주의 성향을 보는 듯하다”란 악평이 쏟아졌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1년 만에 300만대, 지난해 크리스마스 시즌에만 100만대가 팔린다. 리뷰에 참여한 3만5000명이 5점 만점에 4.5점을 준다.
이즈음 산업은 모바일이란 플랫폼 다음에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가상현실(VR)과 인공지능(AI)이 미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를 누구도 제시하지 못했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모두 스마트폰에 어떻게 담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아마존은 다른 방식을 제안한다.
에코 개발자도 소비자가 두려웠다. 음성만으로 통제하는 것에 소비자가 어떻게 반응할까? 리모컨을 떠올렸다. 에코의 첫 번째 박스는 리모컨과 함께 배달된다. 소비자 반응을 보았다. 이럴 수가. 믿기지 않게도, 아니 본능처럼 에코를 사용하고 있었다. 리모컨이라는 걸 언제 써 본 적 있느냐는 양.
“당신은 바쁜 출근 준비를 하면서 날씨를 확인하려 휴대폰을 켜고 애플리케이션(앱)을 열고 싶은가? 아니면 셔츠의 단추를 끼우고 서류가방을 챙기면서 알렉사 이것, 알렉사 저것이라고 소리치는 편을 택할 것인가?”
아마존은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들어 놓은 플랫폼을 교묘하게 우회해 `음성 기반 컴퓨팅`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만든다. 그것도 복잡한 기술이 드러나지 않는 `보이지 않는 플랫폼(invisible platform)`이다. 우스운 장난감처럼 보이던 것이 정작 인간이 컴퓨터와 인터넷과 소통하는 새로운 선택, 새로운 플랫폼으로 여겨지게 된다.
“킨들(Kindle)과 TV는 성공이었지만 스마트폰은 대실패였습니다. 하지만 파이어폰의 음성통제 기술은 에코로 넘어갔지요.” 주주에 보낸 편지에서 제프 베조스는 이렇게 쓴다. “결국 발명과 실패는 떼어 놓을 수 없는 쌍둥이 같은 것 아닐까요.”
플랫폼은 사업 유닛이나 제품 경계를 넘어 적용할 수 있다. 그렇기에 플랫폼 혁신은 더 없는 가치가 있다.
이제 생각해 보자. 밥 오도넬 테크낼러시스리서치 수석 애널리스트의 말처럼 “모바일 플랫폼과 앱 모델을 와해시킬지 모를” 이것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첫째 탭인(tap-in)하라. 에코 환경에서 구동되는 제품을 개발하라. 둘째 스킬(skill)을 선점하라. 에코의 능력은 스킬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 스킬은 기능과 제품에 의해 확장된다. 새 기능을 제공하고 스킬을 선점하라. 셋째 스마트홈 기능을 추가하라. 기존 제품도 관계없다. 에코 기반의 새 기능을 추가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여라. 에코노베이션(Echonovation) 하라.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