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프닝`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뉴욕에서 갑자기 걸어가던 사람들이 멈춰 선다. 그들은 이유 없이 자살한다. 고층빌딩에서는 사람들이 대거 뛰어내린다. 엄청난 사태가 속출하자 모든 학교가 임시 휴교에 들어간다. 뉴욕에는 대피령이 내려진다.
고등학교 과학교사 엘리엇은 이 사태를 피하기 위해 부인, 동료 교사 가족과 함께 뉴욕을 벗어난다. 뉴욕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로 향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자살현상은 뉴욕에서 세계로 퍼져나간다. 사람들은 자신이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몰라 극도의 공포를 느낀다.
영화 속 사람들이 죽게 된 배경은 공기 때문이었다. 환경 파괴로 인해 교란된 생태계 속에서 식물들이 특정 성분을 내뿜고, 그 성분은 바람을 따라 세계로 퍼진다. 사람은 공기 없이 살 수 없기 때문에 아무런 대책이 있을 수 없다. 영화 속 인간이 만들어낸 개발의 부산물은 결국 인류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자연의 역습은 이미 우리 현실로 다가왔다.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왔지만 사람들은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 인간이 만들어낸 오염된 미세먼지가 대기에 가득하다. 유리창 안에서만 밖을 내다볼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6만4000여명이 오염된 미세먼지 때문에 죽는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대도시 미세먼지 70% 이상이 자동차에서 나온다. 미세먼지로 죽는 이는 스모그가 심한 로스앤젤레스 등 대도시에 많다. 우리나라 또한 예외는 아니다. 수도권 미세먼지 농도는 OECD 국가 중 하위를 기록한다.
미세먼지가 많은 요즘 공기청정기는 불티나게 판매된다. 과연 공기청정기는 미세먼지를 걸러내는 것일까. 눈에도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이기 때문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는 어렵다. 대신 공기청정기 작동원리를 살펴볼 수 있다. 많은 공기청정기는 전기집진방식을 이용한다. 기기 안으로 들어온 공기는 필터를 통과한 다음 방전 과정을 통해 양이온이나 음이온과 결합해 전기를 띤다. 이러한 방식의 공기 청정기는 음이온이 발생한다. 음이온이 발생한다는 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가전사도 있지만 음이온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존은 살균력이 있지만 촉매 없이도 다른 물질을 산화시킨다. 눈이나 호흡기 점막을 자극할 수 있다.
헤파필터를 이용한 여과집진식 공기청정기는 전기집진방식보다 미세먼지 제거 효과가 크다. 이러한 방식의 공기청정기 안에는 여러 필터가 들어간다. 이런 과정을 통해 미세 먼지양의 최대 90%까지 여과가 가능하다. 헤파필터는 정전기 힘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초소형 사이즈의 오염물질을 제거한다. 헤파필터는 대신 가격이 비싸다. 또 0.3마이크로미터(㎛)보다 작은 미세먼지는 제거하지 못한다.
공기청정기의 미세먼지 제거 기술이 발전했지만 나노미터 바이러스는 제거하지 못한다. 고가의 공기청정기를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집안에서는 그나마 바깥보다 나은 공기를 접할 수 있지만 결국 생활하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로는 공기청정기 기술 개발보다 대기 오염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우선이다.
기술발전으로 인간의 삶은 더 나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반대다. 개발 부작용인 미세먼지가 우리 삶을 급습했다. 영화 해프닝 속 사태를 그저 허구 속 이야기로 웃어넘길 수 없게 됐다.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