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이 큰 관심을 끌었다. 바둑은 무한에 가까운 경우의 수를 갖는 게임이다. 수를 읽는 고도의 직관력과 총체적 판단력을 필요로 한다. 바둑만큼은 AI가 인간을 쉽게 넘어서지 못해 온 이유다.
알파고가 승리했다고 해서 꼭 AI가 인간의 지능을 능가했다거나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가까운 미래에 AI를 갖춘 로봇이 등장하고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오게 되는 건 더욱더 아니다. 알파고는 바둑만 둘 수 있는 AI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AI 연구는 1956년 과학자들이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처음으로 머리를 맞댄 이후 지금까지 `인간처럼 생각하기`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1997년 체스 대결을 벌인 `딥블루(Deep Blue)`와 2011년 퀴즈쇼에 등장한 `왓슨(Watson)`은 인간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AI다. 딥블루는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와 대결, 2승 3무 1패로 이겼다.
그러나 딥블루는 설계된 알고리즘에 따라 수많은 연산을 반복했을 뿐이다. 엄밀히 말하면 딥블루의 승리가 아니라 알고리즘을 만든 프로그래머와 연산 능력을 확보한 컴퓨터공학자의 승리다. AI와 인간의 대결이 아니라 인간과 또 다른 인간의 대결인 셈이었다.
왓슨은 TV 퀴즈쇼 `제파디(Jeopardy)`에 출연, 이 프로그램의 챔피언 켄 제닝스와 브래드 러터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왓슨 역시 질문의 의미를 이해해 대답한 건 아니다. 4테라바이트(TB)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에 방대한 자료를 모아 놓고 질문에 포함되는 키워드와 관련된 답을 빠르게 찾아냈을 뿐이다. 딥블루는 체스 말을 놓을 위치를 알려줄 뿐 퀴즈는 못 푼다. 왓슨도 퀴즈를 푸는 것 외에 바둑은커녕 오목도 두지 못한다.
이처럼 미리 프로그램을 입력해 특정 과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걸 `약한 인공지능(weak AI)`이라 한다. 알파고에서 보듯 이 분야는 그동안 상당한 성취를 이루고 있다.
반면에 `인간처럼 생각하기`를 목표로 하는 `강한 인공지능(strong AI)` 연구는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를 내놓지 못한 채 과제로 남아 있다. 예컨대 특정 대상을 구별하고 인식하는 것조차 AI에는 쉽지 않다. 2012년 구글 슈퍼컴퓨터조차 고양이 얼굴 식별 테스트에서 정확도 75%에 그쳤다.
그러나 AI가 인간의 능력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서 인간이 될 수 없는 건 아니다. AI가 인간처럼 생각하게 되기 이전에 인간의 지위와 권리를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인간이 된 AI가 필요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생김새는 물론 인간처럼 생각하지도 않고 고통을 느낄 수도 없는 대상을 인간으로 대접하고 있다. 계약 주체가 되고, 재산을 소유하며, 처벌 대상이 되는 `법인(artificail person)`이다. 인간과 전혀 닮지 않은 기업에 인간의 권리를 부여했다.
미국 재계는 기업이 사실상 인간이므로 권리장전에서 보장하는 인권을 보호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유색인종 차별을 금지하기 위한 수정헌법 14조를 확대 해석하고 법인과 자연인이 동등한 권리를 가질 근거로 제시했다. 한 화학회사는 환경보호청의 불법 화학물질 배출 검사에 `프라이버시 보호`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AI에 인간의 지위와 권리가 부여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현재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기업과 AI는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의사표현, 행위 능력·의사도 없는 기업은 대리인으로 나서 줄 인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는 AI는 독자적으로 생각과 판단을 하고 행동에 나설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AI 성과에 대한 감탄이나 로봇 공격과 같은 막연한 두려움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알파고의 등장으로 AI 연구는 급물살을 탈 것이다. AI의 발전을 따라갈 인문·사회과학 분야 분석과 연구가 절실하다. AI의 인간화 과정과 그 이후에 대한 분석은 중요하다.
이번 대결은 승패와 관계없이 구글이 최종 승자다. 30초짜리 미국 슈퍼볼 광고비 5분의 1도 안 되는 비용으로 인류에게 구글의 혁신성을 각인시키고 지주사 알파벳을 널리 알렸기 때문이다.
박성철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K-ICT스마트미디어센터 총괄 sc0314@kc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