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 <12> 혁신 잇기(Connecting the d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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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자퇴한 후 이런저런 과목을 청강했습니다. 손 글씨 과목을 듣게 됐죠. 그때 세리프, 산세리프 같은 다양한 서체를 알게 됐습니다. 아름다움에 매료됐습니다. 당시 제 인생에 도움 될 만한 것은 더 이상 없을 것 같았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10년 후 첫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든다. 아름다운 서체들과 자간을 띄우고 맞추는 기능을 담는다. 손으로 쓴 것 같은 서체를 제공하는 첫 컴퓨터가 된다. 그 후 윈도가 따라했다. 이 우연한 만남이 없었다면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을 우리는 매일 누리고 있다.

2005년 6월 잡스는 스탠퍼드대 졸업식에 초청받는다. “오늘 제가 할 얘기는 별게 아니랍니다. 단지 그것은 서로 연결된 것이었다(connecting the dots)는 얘기를 하고픈 것입니다”라고 축사를 시작한다.

혁신 사례에는 수많은 우연한 만남이 있다.

대학 동창생으로부터 창업을 제안 받은 한 청년이 짐을 챙겨 샌프란시스코로 온다. 너무 비싼 임대료에 놀란다. 고민 끝에 마침 열린 디자인 콘퍼런스 기간에 침대를 빌려주기로 한다. 마땅한 공간도 없었다. 제대로 된 여분의 침대도 없었다. 공기를 넣은 간이침대 3개와 팝타트(Pop-Tart)를 아침식사로 준비한 채 웹사이트를 개설한다. `airbedandbreakfast.com`이다. 250억달러 가치의 에어비앤비는 이렇게 시작된다. 조 게비아와 브라이언 체스키는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 출신, 전미산업디자이너협회가 주관하는 콘퍼런스 때면 호텔이 동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런 우연한 연결이 없었다면 임대료에 찌든 두 청년의 2007년 10월 어느 가을날은 그냥 무심하게 지나갔을지 모른다.

제너럴일렉트릭(GE)에서 신사업과 브랜드 가치 개발을 맡고 있던 베스 콤스톡(Beth Comstock) 부회장에게는 더 많은 사례가 있다. 닐 암스트롱과 아폴로 비행사가 입은 세련된 우주복은 여성속옷회사 작품이었다. 정작 항공우주국(NASA)과 계약을 맺은 대형 방산기업이 아니었다. 항공우주 엔지니어보다 재봉사들이 진공 속의 인간 생존에 더 적합한 지식을 갖고 있던 셈이었다. 심장박동 조절기는 심장전문의와 전기공학자 두 명의 우연한 만남이 만들었다. 수년간 풀리지 않은 에이즈 바이러스 효소 구조는 과학자 연구실이 아니라 한 게이머가 폴딧(Foldit)이라는 이름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베일을 벗겼다.

이런 의외의 사건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떻게 혁신이라는 것을 다뤄야 할까. 그것이 많은 우연의 부분 산물이라면 말이다.

콤스톡은 `혁신은 예상치 않은 만남으로부터 온다(Innovation Springs from the Unexpected Meeting of Minds)`는 기고문에서 혁신은 겉으로 보기에 관계없는 것과 다른 경험이 예상 밖의 방법과 만나 만들어진다고 쓴다. “저는 많은 시간을 점들로 연결하는데(connecting the dots) 보냈죠. 언뜻 보기에 너무도 무관한 것들의 관계를 찾는데 말입니다. GE는 새로운 패턴을 찾고, 파트너를 뒤섞고, 수평적 조직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모든 발명을 한 곳에 모아 `GE 스토어`라 이름 붙이기도 했죠.” 의료용 초음파 기술은 송유관 누수 탐지나 제트엔진 피로도 검사에 쓰인다. 고객과 직원은 이 지식 가게에 들러 필요한 것을 찾아갔다.

그녀는 이런 조언을 남긴다. 우연한 혁신을 위해 자리를 비워 두라. 그러지 않으면 큰 돌파구를 놓칠 수 있다. 창조의 협력 환경을 만들라. 크로스오버와 지식 섞기를 염두에 두라. 다양한 지식의 수평형 네트워크를 지향하라.

잡스는 말한다. “실질 도움이라곤 없을 것 같던 그 서체 과목을 듣지 않았더라면 이 아름다운 기능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배짱이든 운명이든 카르마든 미래의 어떤 것으로 연결됐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연한 결과와 심지어 운명의 만남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혁신은 경이로운 과정이자 산물이다. 신념을 가진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말도 이런 깨달음 덕분 아닐까.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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