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전기차 관련 모든 실험적 시도·운영을 다 해볼 수 있는 `전기차 규제 프리(Free) 지구`를 만들어야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실제 전기차 관련 후방사업을 벌이는 사업자 입장에서 여전히 정부·지자체의 규제 벽이 높은 현실을 질타한 것이다.
정부와 공기관의 전기차 산업 육성 전략도 소비자 지원 보다는 사업자 환경 조성, 경쟁기회 창출 등 산업 쪽으로 무게를 옮겨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24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전기차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민·관 전문가 합동 포럼`에선 이 같은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날 포럼 패널토론 좌장을 맡은 문승일 기초전력연구원장은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시도가 있지만 아직 전기차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았다”며 “우리나라에서 스마트그리드 적용에 가장 적합한 제주도부터 산업화 모델을 실현하는 것이 하나의 해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를 `규제 프리` 전기차 산업 특구로
이날 국가적으로 산발된 다양한 전기차 사업과 정책을 제주부터 집중해 글로벌 사업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제주가 적은 예산으로 빠른 모델을 완성할 수 있는 요충지이고 전기차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공급 등 스마트그리드 모델까지 사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승일 원장은 “전기차는 단품 산업이 아니라 충전인프라 등 서비스 산업을 비롯해 전력 수요공급까지 포함하는 거대한 에너지 신산업”이라며 “적은 돈으로도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고 사업 관리에도 유리하기 때문에 전기차 규제 프리 특구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제주부터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 모델을 만들자는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
박연정 에버온 대표는 “정부 보조금 등 지원만으로 시장 활성화에 한계가 있는 만큼 전기차 기반 서비스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며 “제주에 전기차 셰어링이나 충전기 공유제 등의 사업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관련 교통법 부재로 서울 등에서는 할 수 없는 마이크로전기차 시범사업도 제주에서는 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윤동훈 르노삼성 팀장은 “노르웨이 피오르드 관광지에 가면 마이크로전기차가 특정 구간에 250대가 운영된다”며 “제주 역시 친환경 특성에 맞는 지역에 운영된다면 고객 전기차 인식 효과는 물론 사업성도 뛰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민간 전기차 보급뿐만 아니라 영업용 차량을 다양화해 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고 설명이다.
◇민간 보급 넘어 사업자 `참여의 장(場)` 절실
정부 전기차 정책이 이제는 민간 보급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시장·산업 생태계 조성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공감대가 모아졌다.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지원하는 민간 보급 사업이 2020년 이후 폐지됨에 따라 민간 주도의 자생적 시장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주형진 포스코ICT 부장은 “전기차가 초기 시장에 민간이 대규모 투자를 섣불리 할 수 없는 만큼 정부의 시장 유도 정책이 필요할 때”라며 “공공충전 요금에 대해 ㎾당 요금에 연연하거나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기 보다는 서비스 차별화에 따른 민간 사업자간 경쟁을 유도하는 시장 중심 정책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간이 주도하는 충전인프라 시장 확대를 위해 사업자의 초기 위험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충전사업장의 전기요금을 일정기간 지원해 주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김의경 에너지공단 실장은 “시장과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일방적으로 인센티브만 줄게 아니라, 앞으로는 내연기관차에 탄소세와 같은 패널티를 부과해야 한다”며 “정부뿐만 아니라 지자체도 지역 환경에 최적화된 시장 동기형 정책을 내놓을 때”라고 말했다.
전기차 시장 확산에 따라 시장 피해가 우려되는 기존 산업을 도와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준석 대표는 “정부의 강력한 전기차 산업화 의지와 보급 정책에도 기존 운송업계가 전기차를 쉽게 받아드리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며 “다수의 운송업체 대표는 버스, 택시회사뿐 아니라 충전소나 주유소를 운영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포기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기택시나 전기버스를 교체하는 기존 운송사업자가 해당 지역 내 충전인프라 사업에 참여하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며 “이들이 충전인프라 사업에 참여했을 때 충전에 따른 전기요금 일부를 지원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부도 전기차 산업 생태계 조성에 주력하면서 애로점 해소에 나설 계획이다. 나승식 산업부 에너지신산업정책단 단장은 “산업 생태계 조성에 초점을 맞춰 민간 전기차 사업 성공모델을 만들고 확산시키는데 주력할 것”이라며 “충전인프라 서비스 사업자를 위해 전기요금 지원하는 등의 시장 개선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박태준 전기차/배터리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