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충전기·배터리 등 전기차 분야 국제표준 주도권 확보가 시작됐다. 국가기술표준원은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제주도청과 공동으로 22일 제주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IEVE)에서 `제1회 전기차 국제표준 포럼`을 개최했다. 전기차 분야 전문집단이 모여 국제표준을 논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제표준기구와 최적의 전기차 환경을 가진 지자체가 참여함에 따라 표준 발굴부터 국제 표준화 작업까지 힘을 받게 됐다는 평가다.
제대식 국표원 원장은 “세계 최고 표준단체인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와 최적의 전기차 요충지인 제주를 발판으로 한국이 주도하는 표준시장을 만들겠다”며 “지자체 주도로 전기차 관련 다양한 실증을 하고 문제점과 개선사항은 데이터로 축적해 전기차 국제표준화 기술을 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에서는 우리나라가 국제표준화 작업에 한 발 늦은 만큼 선두권을 따라잡기 위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됐다. 전기차 분야 최대 이슈인 충전기 케이블 단일화와 무선충전, 전기버스 등 대용량 배터리 안전규격 등이 중점 논의됐다.
◇팔(케이블) 3개 달린 전기차 충전기 사라진다
이날 전기차용 충전기 단일 표준화를 위한 토론이 주목을 받았다. 현재 국내뿐 아니라 일부 국가에 설치된 전기차용 급속충전기(50㎾급)는 미국과 유럽, 일본 지역의 충전규격인 `5핀 콤보` `7핀 콤보` `차데모`를 따르고 있다. 하나의 충전기에 3개 케이블이 달린 형태다. 이 때문에 약 2000만원 하는 급속충전기 가격은 10% 이상 더 비싸질 수밖에 없는 데다 소비자 이용에도 큰 불편함이 제기돼 왔다. 여기에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까지 독자 충전 규격을 고집하고 있어 시장 혼란은 더욱 가중되는 상황이다. 주로 가정용으로 쓰이는 7㎾h급 완속충전기 역시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등에 사용되는 교류형 5핀과 7핀 커플러가 사용된다.
이에 한국이 나서서 충전기 케이블 커플러 표준을 단일화시키자는 의견이다. 안재욱 국표원 연구사는 “현재 5종인 충전 커플러를 2종으로 통합해 국제 표준을 선도해야 한다”며 “국제 표준기구와 중앙정부, 지자체가 힘을 모아 최적의 표준을 도출하면서 전기차 제작사와도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합을 통해 전기차 보급 확산은 물론 우리나라 충전기 산업 경쟁력도 한층 강화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에 한국 주도 충전기 케이블 커플러 통합이 쉽지 않다는 전망도 나왔다. 한 충전기 업체 대표는 “우리나라가 단일화된 충전기 커플러 표준을 제시한다고 해도 기존에 각기 다른 충전방식으로 전기차를 내놓거나 출시 앞둔 제조사가 이를 수용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제작사가 기존 충전방식을 바꾸는 것도 문제지만 지금까지 팔린 전기차 고객의 불편함도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라 준지 IEC 회장은 “축적된 IEC 표준기술로 전기차 이용자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놓는데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배터리 표준 인식 변화 필요
우리나라 전기차 배터리 글로벌 시장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시급하다는 전문가 의견이 제기됐다. 국제표준 활동에 일부 대기업만 참여하고 있어 완제품 배터리뿐 아니라 팩이나 소재 등 관련 중소기업 시장경쟁력이 중국·일본 등에 밀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김유탁 전지협회 표준팀장은 “전기차에 가장 핵심인 배터리 관련 표준은 일부 대기업 위주로 국제표준화가 추진되고 있다”며 “중소기업 등 관련 산업계가 함께 표준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인식재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배터리 국제표준은 현재 리튬이온 이차전지 셀과 배터리는 IEC에, 리튬 전지 팩 성능과 안전성 표준은 국제표준화기구(ISO) 표준제정을 각각 완료했다. 이미 세계적 수준이지만 대기업만이 표준혜택을 보는 상황이다. 여기에 한국이 IEC·ISO 표준을 주도할 상위 버전 표준기술 작업이 진행 중이다. 최근엔 우리 기업들과 함께 일본 배터리 관련 기관에서 배터리 내부 단락과 화재에 노출될 경우 배터리 안전을 확인할 수 있는 시험방법(IEC62660-3)까지 확보 중인 상황이다. 국제표준 선점을 위해 국가, 기업 간 표준작업이 발 빠르게 진행 중이다.
이와 함께 리튬인산철에 대한 기술표준 활동이 필요하지 않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 진출을 위해 국내 업계도 시장 대응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전문가 의견은 달랐다.
김 팀장은 “인산철 전지는 에너지밀도와 동작전압이 리튬이온보다 낮아서 안전성 측면에선 장점이 될 수 있지만 자동차가 요구하는 제로백·고출력, 고용량 성능은 만족할 만한 수준에 못 미친다”며 “전기차가 필요로 하는 배터리 팩 성능이나 안전성이 중요하지 어떤 소재를 쓰는 것은 이슈가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날 국내에서 개발돼 경북 구미에서 운행 중인 무선충전 전기버스용 주파수(20 kHz)와 철도용 주파수(60 kHz)에 대한 국제표준화 작업과 전기차용 모터·인버터, 배터리 연구개발 연계를 통한 국제표준화 전략 등이 논의됐다.
제주=박태준 전기차/배터리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