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인터뷰] 지진희, 한 중년배우의 아름다운 ‘이중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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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현우 기자

올해 나이로 46세.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배우 지진희는 여전히 ‘여심 저격수’로 건재하게 활동 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농익어가는 그만의 멜로연기는 항상 안방극장을 사로잡고 있다.

지진희는 최근 종영한 SBS 주말드라마 ‘애인있어요’(극본 배유미, 연출 최문석)에서 최진언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며, 호평을 받았다. 때로는 진지한 로맨틱 가이로, 또 가끔은 어리숙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도련님으로, 한 캐릭터 안에서 팔색조 같은 연기를 선보인 그는 이번 드라마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제대로 증명했다.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지진희를 만났다. 드라마가 끝난 후 일상으로 돌아와 가장 역할을 충실히 수행 중이라고 밝힌 그는 한결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특히 6개월 넘는 기간 동안 연기해왔던 극중 캐릭터를 내려놓은 소감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배우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염두에 뒀던 부분이 작품과 일상생활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거였어요. 꽤 오랜 시간 한 역할에 집중을 하다보면 그 캐릭터 성격이 몸에 조금씩 배거든요. 그래서 드라마가 끝난 후 이런 점들을 실생활에 최대한 나타내지 않으려 하고 있어요. 예전에 찍었던 영화 가운데 거친 형사 역할을 맡은 적 있었는데 당시 와이프가 제게 요즘 말투가 많이 거칠어졌다고 하더라고요. 이 일을 하면서 계속 이런 문제로 힘들어 할 수 있겠구나 느꼈어요. 때문에 촬영 현장에서는 일에만 집중하고 집에서는 가정에만 신경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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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현우 기자

‘애인있어요’에서 그가 연기한 최진언은 도해강(김현주 분)의 남편으로, 후배 강설리(박한별 분)와 잠시 불륜 관계가 되지만 다시 한 번 도해강을 사랑하게 되는 인물이다. 최근 지진희는 최진언을 본인의 ‘인생 캐릭터’라고 밝혔을 만큼 배역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지진희가 같은 유부남의 입장에서 바라본 최진언은 어떤 인물일까?

“지진희의 입장에서는 최진언을 절대 이해할 수 없겠죠. 하지만 제가 최진언이 돼서 바라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강설리에게 잠시 흔들리기는 했지만 쭉 한 여자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남자에요. 지금 이 시대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고, 어찌 보면 운이 좋은 인물이죠. 자신이 먼저 아픔을 줬던 아내와 재결합에 성공했으니까요. 물론 저는 제 아들한테 ‘절대 저런 남자가 되면 안 된다’고 알려줬어요.(웃음)”

극중 최진언은 가족과 사랑하는 아내 도해강 사이에서 가장 난처한 상황을 겪은 인물이었다. 자신의 아버지이자 천년제약 회장인 최만호(독고영재 분)는 물론이고 누나 최진리(백지원 분)와 형부 민태석(공형진 분) 모두 도해강과 그의 가족들에게는 모두 악연이었다. 최진언은 가족의 악행을 눈감아주기보다 사랑을 택했다.

“저도 최진언의 행동에 동의합니다. 실제 저였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예요. 최진언이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아무것도 바뀔 수가 없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집안 정리를 할 때도 짐이 많은데 과감하게 버리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겠죠. 아무리 가족이라도 그동안 도해강에게 저질렀던 짓이 있는데 최진언이 잘한 일이라고 봅니다. 또 그게 가족들한테도 더 좋은 방향이고요.”

드라마 속에서 지진희는 배우 김현주와 환상적인 ‘케미’를 발산했다. 지난 2004년 방송한 SBS 수목드라마 ‘파란만장 미스김 10억 만들기’(극본 박연선, 연출 장기홍)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후 11년 만에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여전히 ‘찰떡궁합’을 자랑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요즘 네티즌들이 올린 ‘파란만장 미스김 10억 만들기’ 시절 사진들을 봤었는데 그때에 비하면 저나 김현주 씨나 어른이 된 것 같아요. 이번에도 함께 촬영을 하면서 과거보다 더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됐어요. 김현주 씨와 종종 ‘앞으로 또 언제 같은 작품에서 만날까’, ‘10년 만에 만났는데 또 10년 후에 만나는 거 아닐까’ 이런 얘기를 한 적도 있어요. 파트너를 잘 만나는 것도 복이죠.”

지진희의 김현주 칭찬 릴레이는 계속 이어졌다. 이슈가 됐던 1인2역 연기도 김현주가 아니면 누가 이 연기를 할 수 있을지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했을 만큼 드라마 속 파트너에게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배역을 맡을 수 있다는 건 배우들에게는 큰 복이자 행운이에요. 단순하게 보자면 김현주 씨가 도해강과 독고용기 1인2역 연기를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기억을 잃기 전 도해강과 기억을 잃은 후의 도해강까지 각각 다르게 연기를 했으니 1인4역을 한 셈이죠. 이런 부분들은 김현주 씨가 많은 연기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잘 해낸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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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현우 기자

‘애인있어요’는 배우들의 연기뿐만 아니라 짜임새 있는 극본과 뇌리에 강하게 박히는 명대사들로 팬들에게 ‘명품드라마’라는 찬사를 받았다. 지진희도 ‘애인있어요’의 대본 집필을 맡은 배유미 작가에 고마움을 표했다.

“작가님이 얼마나 고민을 하고 계산을 많이 해서 대본을 쓰셨는지 지문이랑 대사만 봐도 느낄 수 있어요. 정말 고생해서 대본을 집필한 흔적이 눈에 보일 만큼 사소한 대사 하나하나 허투루 쓰신 게 없어요. 작가님이 얼마나 힘들게 작업하시는지 느껴지니까 대본을 받으면 항상 감동을 받습니다.”

지진희가 ‘애인있어요’를 통해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일까?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간단명료하면서도 의외로 철학적이었다. 단점을 생각하면 그건 단점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본인이 잃은 것은 없다는 얘기였다.

“저는 항상 단점을 생각 안합니다. 매번 단점만 생각하고 의기소침해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쭉 단점으로 남을 수밖에 없어요. 반면 장점은 그 반대죠. 그렇기 때문에 저도 좋은 생각만 하고 좋은 말만 하려고 노력중이에요. 물론 가끔씩 정말 화가 날 때도 있지만 늘 평소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감정 기복을 줄이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요즘 뜨고 있는 신인 후배 연기자들이 잘 새겨들었으면 좋겠어요. 뜨면 뜰수록 추락했을 때 즉사할 확률이 높거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업무로 받았던 스트레스를 취미활동을 통해 푸는 만큼 지진희 또한 다양한 취미로 촬영장에서의 피로를 푼다. 평소 즐겨했던 운동인 야구는 어깨 연골 부상 때문에 못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암벽 등반에 재미를 붙였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선천적으로 타고난 손재주를 활용한 레고 조립과 공예는 그의 삶에 활력소가 되고 있다. 이미 여러 방송을 통해 검증된 그의 손재주를 MBC 예능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을까?

“한 번쯤 그런 방송을 해보고는 싶지만 시스템을 잘 모르고 저보다 방송을 잘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출연은 힘들 것 같아요.(웃음)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건 기계가 보편화 된 요즘 시대에 정말 위대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엄마와 할아버지도 손재주가 정말 좋으셨는데 확실히 저도 그런 능력을 타고난 것 같아서 행복합니다. 특히 레고를 만들 때면 3일을 밤새도 전혀 피곤하지 않아서 정말 좋아요. 이런 취미들 덕분에 제가 일터에서 얻는 스트레스를 금방 풀 수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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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희는 지금 자신의 나이 대에도 아직 멜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전하며, 앞으로 더욱 다양한 콘텐츠를 지닌 드라마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한국 드라마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요즘 드라마들이 대부분 젊은 연령층의 사랑에만 치우쳐져 있는데 작품 소재들이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김수현 작가님의 가족 이야기를 다룬 작품도 꾸준히 나와야 하고,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종편, 케이블채널의 드라마들처럼 신선한 시도를 공중파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단편드라마들이 과거에 비해 많이 사라졌는데 다시 활성화가 됐으면 좋겠어요.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이 되기도 할 테고, 연출자분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더 참신한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요?”

인터뷰 내내 지진희는 수려한 언변을 뽐내며, 다양하고 재치 있는 말들을 꺼내놓았다. 하지만 늘 빼놓지 않고 얘기했던 내용은 연기와 가족이었다. 브라운관에서 여심을 사로잡는 로맨틱 연기파 배우로, 실생활에서는 누구보다 다정한 남편이자 아빠로, 훈훈한 이중생활을 계속 잘 해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최민영 기자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