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이세돌]멀리 본 구글, 우리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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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대결을 앞두고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왼쪽)와 이세돌 9단, 에릭 슈미트 회장이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이번 ‘세기의 대결’로 구글은 단숨에 인공지능(AI) 시장 리더로 떠올랐다. 장기적 안목과 과감한 투자로 인공지능 시장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성과중심 연구개발(R&D), 전략 부재, 생태계 조성 실패 등으로 제자리걸음인 국내 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 인공지능 시장에서 벼락 스타가 된 알파고는 2010년 런던에 설립된 딥마인드의 인공지능바둑기사 프로그램이다. 구글은 2014년 4억달러(4332억원)라는 파격적인 금액으로 딥마인드를 인수했다. 2년이 지난 현재 현존 바둑 최강자인 이세돌 9단을 꺾은 세계 최초 인공지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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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과 알파고 대결에 전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국을 단순한 ‘인간-기계’ 대결 혹은 기술 관점이 아닌 구글의 생태계 전략에 초점을 맞춰 볼 것을 주문했다. 알파고는 작은 스타트업이 만든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에 불과했지만 구글의 고도 인프라 역량이 접목되며 빛을 발했다.

손영성 ETRI 초연결연구소 책임 연구원은 “딥마인드 기술이 특별하다고 하지만 기존에도 많은 연구소와 학계에서 비슷한 알고리즘으로 기계와 인간 바둑 대결을 진행했다”며 “속속 패배만 기록했던 기존 인공지능과 달리 알파고는 구글이 가진 강력한 인프라와 결합하면서 비로소 인간과 대결에서 승리하는 사례를 남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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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데이터센터 전경 <자료:AP>

알파고는 입력된 기보 16만건을 토대로 지난 5개월간 매일 3만번씩 실전 경험을 쌓았다. 구글은 이 과정에서 중앙처리장치(CPU)가 1200개나 탑재된 초고성능 서버를 지원했다. 연산에 필수인 범용그래픽처리장치(GPGPU)도 수백 개나 장착했다. 일반 연구소나 학교에서 수 년이 걸릴 학습 시간을 단 몇 초로 줄였다. 학습량이 늘면서 승리를 위한 방식으로 스스로 터득했다.

단순히 흥행을 위한 투자가 아니다. 구글은 인공지능 기술을 검색은 물론 로봇, 무인자동차, 스마트홈 등 다양한 산업영역에 접목할 계획이다. 인공지능 생태계를 구축하는 중심에 있다.

뒤늦게 기술 확보에 나선 우리나라는 갈 길이 멀다. 시장 선도를 목표로 투자하는 기업이 거의 없다. 네이버 등 일부 대기업이 기술개발을 시도한다. 대부분 자체 개발을 추진해 기술 확보가 제한적이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기업 간 협업을 통한 생태계 조성도 어렵다.

IT업계 관계자는 “구글, IBM, MS 등 인공지능 강자들은 모든 것을 다하기보다 경쟁력 있는 기업을 인수하거나 파트너십을 맺어 생태계를 구축한다”며 “우리나라는 대기업 주도로 자체 개발에 주력, 기술 확보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정부 주도 R&D도 부족한 점이 많다. 우리나라 대표적 인공지능 기술 개발 사업은 2013년 시작한 ‘엑소브레인 프로젝트’다. 10년간 1070억원이 투입된다. 참여기관만 26개에 달한다. 국가 주도 대규모 프로젝트라고 하지만 구글이 연간 투자하는 금액 절반도 안된다.

알파고 학습능력을 배가한 구글 인프라를 벤치마킹해 딥러닝 프레임워크 개발도 올해 추진한다. 이 역시 4년간 70억원 남짓 투입된다.

정부 연구소 관계자는 “엑소브레인 프로젝트는 3년마다 과제 평가를 해 진행여부를 판단, 장기적으로 기술개발에 전념하기보다 당장 실적을 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투입되는 예산도 연간 100억원 남짓에 불과해 구글 등 글로벌 기업과 비교해 열악하다”고 말했다.

시장 생존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R&D 투자, 자원의 선택과 집중이 필수다. 인공지능이 적용되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후발주자임을 감안해 제조, 국방, 의료 등 특정 산업군을 염두하고 최적화된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는 게 효율적이다.

인공지능 기술 바탕이 되는 데이터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딥러닝 핵심은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계가 스스로 학습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공공 데이터 개방을 적극 추진하지만, 품질, 종류 등 선진국과 격차가 크다.

이경일 솔트룩스 대표는 “최근 화두가 되는 ‘인더스트리 4.0’ 등 제조 영역이나 국방, 의료 등 특정 산업군을 선정해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개발하는 게 효율적”이라며 “정부가 기술 개발에 핵심인 데이터 개방을 적극 추진해 양질 데이터를 시장에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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