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안 읽는 한국… 미래도 못 읽는다’
몇일 전에 본 신문 헤드라인이 계속 뇌리를 맴돌았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09년)에서 한국 학생들은 독해 부문(Reading)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교과서와 참고서를 뺀 독서량 순위는 16위다. 38.5%의 학생이 학업 이외에는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 독서로만 놓고 보면, 한국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퇴보하고 있는 것이다.”(일간지 3월 4일자, 읽기 혁명(1) 기사내용 중에서)
이 기사를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는 책을 얼마나 읽고 있을까? 우리네 아이들은 책을 얼마나 좋아하고 있을까?’ 였다. 그리고는, 예전에 초등 학부모들과 주고받았던 고민들이 문득 떠올랐다. ‘독서’라는 주제를 놓고 평범한 엄마들 (육아동지들)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당시 초2 남학생의 엄마가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며 화두를 꺼냈다.
“학교도서관에 가면 만화책들만 너덜너덜해요.”
“6세 때 처음 한자만화를 접했는데, 엄마 입장에서는 아이가 한자에 관심을 보이니까 좋더라구요. 스스로 한자 따라 쓰고 학습지도 하게되고 재미삼아 한자검정시험도 보고... 근데 지금은 오로지 만화책만 보는 거예요. 글밥 많은 책은 아예 손도 대지 않아요.”
“노자, 국부론 같은 내용을 아이가 어떻게 접하겠어요. 만화로 보면 쉽게 이해되니까, 다양한 지식을 쌓았으면 하는 마음에 보게 하는 것 같아요.”
일상에서 심각하게 고민했던 문제는, 다름 아닌 ‘학습만화’였다. 다양한 학습만화들이 시중에 나와 있고, 아이들 사이에서는 만화를 보는 것이 하나의 문화처럼 형성되어 있다. 그야말로, 학습만화 전성시대다.
여기서 간단한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학습만화도 책인가?”
사실,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정답도 없다. ‘책’이기도 하고 ‘책’이 아니기도 하다. 다만, 몇가지 힌트를 빌려 유추해 볼 수는 있겠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독서의 경제적 영향’ 보고서에서는 국가별 연평균 독서율을 따질 때 ‘수험서’와 ‘만화’를 제외하고 있다. ‘만화’형식은 ‘독서’의 범주에 넣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서할 때 다양한 뇌 부위가 진화하고, 기억력, 사고력, 창의력 등이 좋아진다고 한다. ‘책 읽는 뇌’의 저자 매리언 울프 교수도 “활자를 더 많이 읽어야 뇌가 발달 한다”는 점에 대해 과학적 근거를 들어 강조한 바 있다.
사실, 독서가 중요하다는 것은 대부분의 부모가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재미있는 학습만화가 넘쳐나는 환경 속에서 아이들에게 무조건 활자 책만 읽으라고 강요할 순 없는 게 현실이다. 학습만화의 장점이 분명 있고, 아이들은 ‘책’으로서 만화를 접하고 있다. 또한, 지식을 쌓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학부모들도 상당수이고, 실제 초등교과서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 만화형태의 설명을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사실, 학습만화의 좋은 측면도 많다.
다만, 어릴 때부터 만화에 너무 익숙해져 버리면 활자 책에 손을 대지 않게 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겠다. 만화에 익숙해지기 전에 먼저 책을 좋아하도록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영유아기, 취학전 시기에는 활자와 그림이 어울어진 동화책 위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가이드해 주는 게 좋다. 아이가 일단 책 읽는 재미를 알게 되면 성장한 후 만화에 노출되더라도 쉽게 중독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책을 좋아하게 되면, 책은 책대로 즐기게 되고, 만화는 만화로서 즐기게 되는 것이다.
그럼, 취학전후의 나이에 이미 만화에만 몰두하고 있는 아이라면 어떻게 책과 친해지게 할 수 있을까. 이 경우, 학습만화를 보고난 후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하게끔 하는 ‘하브루타’ 방식을 활용해 볼 수 있다. 생각, 질문, 대화. 이 3가지가 수반된다면 만화형식도 뇌를 움직이게 하는 텍스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1:1 매칭’과 같이 ‘만화 한권 보면 동화책 한권 읽는 식’으로 독서습관을 점진적으로 바로 잡아준다면 ‘보는’ 텍스트와 ‘읽는’ 텍스트 사이에서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아이가 ‘책’을 즐길 수 있도록 환경과 습관을 만들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엄마아빠가 먼저 책 읽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본보기가 되어 주는 것이다.
부모인 ‘나’부터 먼저 책을 가까이 하고, 아이와 함께 읽자.
‘책 안읽는 한국… 미래도 못 읽는다’라는 헤드라인이 오늘의 현실일지언정, 미래(아이들)로까지 이어지게 해서는 안 되겠다.
[필자] 김연정 트위터코리아 이사.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마케팅담당 부장, 아디다스코리아 브랜드커뮤니케이션 팀장을 지냈고, 저서로는 ‘난 육아를 회사에서 배웠다(매일경제신문사)’가 있다.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한 성공’을 지향하며, 육아동지들을 위한 ‘리더십’ 강연도 진행한다. @TheNol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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