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 정무위원회는 공공 밴(VAN) 도입 근거를 정하는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영세가맹점에 수수료 절감 등 혜택을 주겠다는 취지인 데 또 하나의 총선용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치권 주도로 중소·영세 가입자를 위한 공공 밴 도입 근거를 마련했다. 기프트카드 등 선불카드 미사용 잔액을 공공 밴 운영자금으로 활용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와 관련 일부 카드사와 밴업계는 현실성이 전혀 없는 정책이라며, 정치권 주도로 공공 밴 도입을 추진할 경우 특정 업체 밀어주기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우선 공공 밴이 도입되면 지난 30년간 영세가맹점을 관리하던 밴 대리점은 퇴출될 수밖에 없다. 종사인력만 1만명이 넘는데 아무런 준비 없이 공공 밴 도입을 밀어붙이는 것은 시장 논리에도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한 밴사 고위 관계자는 “과거 정치권에서 특정 업체에 공공 밴 운영권을 맡기려는 작업이 있었다”며 “해당 업체는 직원이 몇 명 되지 않고 POS(판매시점관리) 시스템 개발조차 하지 못하는 곳”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밴업계는 모 국회의원과 해당 업체가 공공 밴을 설립해 부당 이득을 취하려 한다는 취지의 투서를 금융당국에 전달한 바 있다.
공공 밴 도입이 영세가맹점을 위한다는 목적이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대표적인 게 영세가맹점 IC단말기 전환사업이다. 카드업계는 기금 1000억원을 조성해 영세가맹점을 대상으로 IC카드단말 무상 교체 작업을 진행 중이다. 사업자 3곳을 선정했지만 특정 업체 밀어주기 의혹과 기존 밴사 인프라를 전혀 활용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사업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업체 선정 과정도 불투명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카드업계도 공공 밴 도입은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전문조직과 대리점이 없는 곳에 공공 밴 사업권이 돌아가면 득보다 실이 많다”며 “정부가 주도하는 보급사업 등이 전면 백지화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공영역을 민영화하는 추세에서 역으로 민간 서비스를 공공화 한다는 것도 시장논리와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과거 공공 밴 설립 방안을 놓고 소상공인연합회와 밴업계가 충돌한 사례도 있다.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인 밴 수수료 적용을 위한 방안으로 제시됐지만 영세가맹점 IC결제단말기 보급 사업권 주체를 놓고 설전이 오가는 등 갈등의 골만 깊어진 상황이다. 결국 보급사업에 민간사업자를 선정하면서 일단락됐지만, 국회에서 공공 밴 설립을 위한 지원 방안이 마련된 만큼 양측 간 갈등이 또 다시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밴협회 관계자는 “200만에 이르는 중소·영세가맹점 밴사를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여러 밴사가 사기업으로 추진 중인 사업을 국유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공공 밴을 통해 단말기 보급을 일원화하면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또 하나의 옥상옥을 만드는 구조가 될 것이 자명하다”고 말했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