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금융 위기 서막인가 일시적 조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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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이 불안하다. 설 연휴를 마친 코스닥지수가 8% 넘게 빠졌다가 반짝 오름세를 보이는 등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불안감 속에 투자자 사이에서는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안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반면에 안전자산으로 분류된 금은 연초 이후 17%가량 상승했다. 금과 미국 달러 등 안전자산으로 돈이 쏠리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연말 이후 시작된 금융 불안은 유가 하락에서 시작됐다. 가파른 유가 하락은 신흥 산유국을 경제 위기로 몰아갔다. 최근 중국 경기 침체 우려와 일본 및 유럽 은행 불안까지 더해졌다. 금융시장 불안이 실물경제를 빠르게 덮치는 글로벌 금융 위기가 재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있다.

◇금융 위기 서막인가 일시적 조정인가

“오전 장 시작 전만 해도 중국 증시가 급락하겠다고 예상했는데 다행히 버텨줬네요.”

지난 15일 국내외 증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춘절 연휴로 열흘 동안 쉰 중국 증시가 이날 보합세로 마무리한 덕택이다. 중국 증시가 쉬는 동안 글로벌 증시는 지옥을 맛봤다. 독일 도이치 은행 부실 노출 등으로 글로벌 증시는 급박하게 움직였다. 일본 니케이지수는 한주 간 11.1% 급락했고 국내 코스닥지수는 연휴 이후 이틀 동안 10% 넘게 하락했다. 코스피지수도 4% 넘게 빠졌다.

15일 이후 증시가 유가 상승과 중국 증시 안정을 호재로 강하게 반등했지만 이를 안정 신호로 받아들이는 투자자나 전문가는 많지 않다.

연초 이후 유가하락으로 인한 신흥 원유생산국 경기침체, 위안화 가치 하락, 중국 경기 침체 우려, 북한 미사일 발사에 따른 남북한관계 긴장에 유럽은행 위기설까지 악재가 쏟아졌지만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가장 간담을 서늘하게 한 것은 도이치뱅크 실적부진이다. 지난달 28일 도이치뱅크가 68억유로(약 9조3000억원) 적자 발표로 유럽 은행 주가와 채권가격이 급락했다. 적자로 조건부후순위채권(코코본드) 이자지급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도이치은행은 다행히 지난 12일 자사채권 매입으로 사태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유럽 은행 부실이 금융위기를 불러오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김형래 대우증권 연구원은 “유럽 국가 가운데 사이프러스, 슬로베니아, 아일랜드, 헝가리,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은 은행 부실채권 비율이 10%에 이르고 오스트리아, 스페인, 폴란드 등도 5~10% 구간에 있어 유럽은행 부실채권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소규모 은행은 부실채권 비율이 17.8%에 이른다. 우리나라 은행 부실채권 1.41% 대비 적게는 6~7배, 많게는 10배를 훌쩍 넘기는 수치다. 여기에 원유나 원자재 등 파생상품 손실이 발생하면 유럽 은행 부실은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 연구원은 “유럽발 금융위기가 단기간 내 현실화할 가능성은 낮지만 글로벌 경기 둔화가 지속되면 파생상품 투자 손실 등으로 이어져 시간 경과와 함께 현실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몰고 온 글로벌 금융위기 역시 부실대출과 주택담보증권 평가절하에서 비롯됐다는 판단에서다.

◇안전자산 선호 실물 경제 위축 우려

일본 마이너스 금리 체제 전환 후 시작된 엔화 강세 역시 세계 경제 불안을 설명하는 요소로 지적된다. 금융위기 때마다 엔화가 금·달러와 함께 안전자산으로 분류돼 불안의 전조로 작용했던 탓이다.

박형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최근 엔화강세는 금융시장에 새롭게 부각되는 ‘글로벌 은행 시스템 우려’가 반영된 결과로 봐야 한다”며 “달러와 함께 엔화가 안전자산 축으로 이동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아시아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당시 등 세계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높아질 때마다 엔화는 강세를 보였다는 게 이유다. 이번에도 엔화 강세는 위험 자산 가격조정을 야기하는 신호로 읽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박 연구원은 “앞으로 일본 통화당국이 엔화강세를 진정시키고자 외환시장 개입 같은 조치를 내놓겠지만 유럽발 금융 시스템 우려가 충분히 해소되지 않는 한 엔화가 약세기조로 돌아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들어 세계 실물 경제가 위축된 것도 금융시장에 불안요소로 꼽힌다. 중국은 1월 수출이 전년 대비 11.2% 줄었고 수입은 18.8% 감소했다. 수출과 내수가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와 함께 빠르게 위축되는 상황이다. 양적완화 정책을 펴왔던 일본도 4분기 실질 GDP가 전 분기보다 0.4% 감소했다. 유가하락으로 시작했던 신흥국 경기 부진이 중국과 일본 등으로 전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 소비 회복 그나마 ‘희망’

글로벌 경기가 침체 우려가 높은 가운데 그나마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소비 경기 흐름이 탄탄한 것은 긍정적이다. 선진국 소비가 살아나 유가를 움직이고, 이는 다시 신흥국 경기 침체국면을 벗어나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측면에서다. 1월 자동차와 주유소 판매를 제외한 미국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0.4% 증가했다. 지난해 4분기 주춤했던 미국 소비가 1월부터 회복될 조짐이다. 지난해 9월부터 3개월 연속 감소했던 유로존 소매판매 역시 12월 중 전월 대비 0.3% 증가 반전됐다.

나아가 수출을 미국 등지로 다양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세계 경제 불안이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면서도 “유가 하락이나 실물경기 침체가 국내 경제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쳤는지는 1월 국내 지표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중국과 신흥국 경제가 가파르게 가라앉을 가능성에 대비해 중국 일변도 무역에서 미국 등지로 저변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 실장은 “중국은 미국 시장에 비해 두세 배 더 커 놓쳐서는 안 될 시장임은 분명하지만 경착륙 우려가 상존해 시장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 기업도 글로벌 경기 불안 속에서 모험 투자를 감행하는 것보다 안정적 투자흐름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이경민 코스닥 전문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