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강세가 이어지면서 미국 정보기술(IT) 기업이 역풍을 맞고 있다. 당분간 달러강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여 실적 회복이 지연될 전망이다. 환차손을 만회하기 위한 해외 부품공급업체 압력 가중 가능성도 있다.
2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해외의존도가 높아진 미국 IT기업이 달러강세로 상당한 환차손을 입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IT 기업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서비스 해외 판매에서 과거에 전례없는 성공을 거뒀다. S&P다우존스에 따르면 미국 IT 기업은 2014년 기준 매출 59%를 해외에서 기록했다. S&P500지수를 구성하는 기업은 해외비중이 48%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하워드 실버블랫 S&P다우존스 애널리스트는 “IT분야는 앞으로도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해외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기침체로 제품 수요가 줄어드는데다 달러강세로 해외 판매가가 상승하면서 지난해 4분기 IT기업 실적은 큰 영향을 받았다. 애플은 4분기 결산 발표에서 달러 강세로 분기 매출이 50억달러 가량 줄었다고 밝혔다. 애플은 매출 66%를 미국 이외에서 번다. 환율영향을 제외하면 분기 매출은 759억달러가 아닌 808억달러였을 것이라고 애플은 밝혔다. 매출증가율이 2%가 아니라 8%에 달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애플은 달러 강세에 〃〃대비한 환헤지에 추가 이익 확보를 위해 러시아와 브라질, 터키에서 스마트폰 등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애플에 따르면 달러화 대비 각국 통화는 추락을 거듭했다. 2014년 9월 이후 러시아 루블은 50% 하락하고 브라질 레알은 40% 이상 하락했다. 캐나다 달러와 호주 달러, 멕시코 페소, 터키 리라 모두 20% 또는 더 낮아졌다.
다른 IT 기업도 마찬가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달러 강세가 4분기 매출액을 19억달러 가량 줄어들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IBM은 환율영향이 15억달러 정도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오라클은 5억4000만달러 줄었다. 시장 조사 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달러 강세로 세계 IT 부문 지출은 2015년 2170억달러 감소했다. 감소폭은 2009년 금융 위기 때보다 크다.
달러 강세로 이득을 본 기업도 있다. 아마존 클라우드서비스는 해외 데이터센터를 설립할 때 달러 강세가 유리하게 작동했다. 아마존은 4분기 결산에서 환차익을 얻었다고 보고했다. 독일 소프트웨어 기업 SAP를 포함한 다른 나라 IT기업도 달러 강세 덕분에 실적 개선이 이뤄졌다.
달러강세는 올해 실적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애플은 1분기에 환율 변동이 매출을 4% 감소시킬 것으로 예상하고 달러 강세에 대비해 환헤지를 강화할 방침이다.
환차손을 피하기 위한 미 IT기업 전략은 해외 부품업체 단가 인하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애플 등은 달러강세로 해외 부품업체가 혜택을 본만큼 수익을 나눠야 한다는 입장이다. 달러강세는 공급업체와 새로운 계약협상을 할 때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것으로 예상됐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