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짧은 기간에 비약적인 산업 발전을 이뤘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선진국에서 몇 백 년 걸린 시간을 불과 50~60년 만에 이뤄냈다. 경이로운 성장의 핵심 동인 중 하나를 손꼽으라면 과학기술을 들 수 있다. 사회, 경제, 과학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아무런 기반이 없었던 1950~60년대에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한 정부는 정부출연연구기관 설립했다. 출연연은 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주도하면서 현재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초석을 마련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대기업 R&D 역량 확대, 추격형 연구개발(R&D) 전략의 한계, 출연연 예산과 인력 등 외연 성장과 함께 국민과 기업의 기대가 커지면서 출연연 역할에 대한 국가·사회적 요구가 변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발맞춰 오늘날 출연연은 추격형 R&D에서 벗어나 선도형·창조형 R&D로 민간 기업이 수행하기 어려운 기초·원천과 공공·인프라 연구에 집중하며 변신을 꾀하고 있다. 출연연의 주요 역할이 국민경제와 일자리 창출에 직접 도움이 되고 중소·중견기업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세계와 우리나라 경제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중소기업의 육성에 집중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기술경쟁력 확보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중소기업은 예산과 인력 부족 등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기술 전문가 집단인 과학기술분야 출연연에 중소·중견기업 R&D 전진기지의 역할을 수행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 가운데 과학기술분야 25개 출연연 중 하나인 한국한의학연구원의 경우 중소·중견기업으로 기술이전 확대, 중소기업 지원 규정과 기술금융 제도 마련, 패밀리 기업 선정 등으로 중소·중견기업의 기술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연구원 보유기술의 소액·무상 특허나눔을 확대하고 기술나눔멘토를 구성 운영해 과학기술 기반 중소기업 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비단 한국한의학연구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 과학기술 출연연의 노력이 기업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우리나라 산업경제 활성화 돌파구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출연연이 기업의 수요를 반영한 수요 맞춤형 R&D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이전이 실시된 후에도 수 년 간의 상용화 개발연구를 거쳐야 제품으로 출시된다. 이런 상용화 기간을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R&D 기획단계부터 기업 수요 분석을 통한 수요 맞춤형 R&D를 추진해야 한다. 기술 상용화를 위한 공동 R&D 지원도 수행해야 한다.
출연연이 보유하고 있는 전문지식, 경험, 노하우 등을 중소기업의 기술애로사항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 출연연 연구자들이 중소기업 지원에 거리낌 없이 참여 할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정부차원에서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하지만 개별 출연연의 특성, 인력, 예산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기업이 요구하는 만큼 중소기업 지원에 올인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효과적인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서 이런 애로요인을 고려한 출연연 중소기업 지원 정책 및 제도 마련이 뒷받침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출연연 연구자들이 중소기업지원에 대한 사명감을 가져야한다. 출연연의 일부 연구자는 본연의 임무와 역할을 직접적인 연구개발 수행을 통한 우수 성과 창출로만 한정짓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 지원 업무는 R&D 업무에 방해가 되거나 개인의 경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제는 출연연의 연구자도 R&D 수행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지원 업무 또한 출연연의 미션으로 인식하고 사명감을 갖는 등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에서도 연구자들이 중소기업 지원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한 제도 및 문화 등 기반조성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송성환 한국한의학연구원 성과확산팀장, ceto@kiom.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