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바닥을 기는 1차 이유는 공급과잉에 있다. 셰일혁명을 일으킨 미국이 단번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어깨를 견주는 산유국으로 부상하면서 기름이 남아도는 상황이 연출됐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유가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20~30달러대를 오가는 현 상황에서 이익을 볼 수 있는 산유국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1년 넘게 산유국은 감산하지 않고 있다. 재정위기가 심각한 수준에 달한 것을 감안하면 더욱 이해가 안가는 대목이다.
전문가는 이를 두고 ‘감산에 합의해도 이행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1980년대 초 세계경제는 미국 금리가 폭등하는 와중에 유가를 포함한 상품가격이 고점 대비 40% 추락해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1983년 멕시코에 이어 아르헨티나, 브라질, 나이지리아, 필리핀, 터키 등 주요 신흥시장은 연쇄 부도를 맞았다. 당시 북해산 원유 생산이 역대 최고 수준에 달한 상황에서 러시아는 재정 부양을 위해 원유 생산량을 끌어올렸고 공급과잉이 심화됐다. 1986년초 WTI는 배럴당 31.75달러에서 3월 31일 배럴당 10.42달러까지 떨어졌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유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원유 생산량을 1000만 배럴에서 250만 배럴로 줄였다. 하지만 다른 산유국이 감산에 동참하지 않으면서 혼자만 손해 보는 장사를 했다.
현재 산유국은 가격을 낮추더라도 판매량을 늘리는 것이 더 이익이라도 보고 있다. 다른 산유국이 감산에 동참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나홀로’ 감산하면 시장 가격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판매량 마저 줄어드는 최악을 상황을 맞게 된다. 더욱이 최근 국제유가가 과도하게 하락해 산유국 재정위기도 심각해지면서 감산이라는 불확실한 카드를 선택할 여력은 더욱 줄어들었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금 산유국에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나는 계속 팔고 다른 나라가 감산하는 것”이라며 “서로가 이런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감산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낮고 실제 이행 구속력도 거의 사라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임우영 홍콩과기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유국은 감산합의로 얻을 수 실익보다는 감산이 이뤄지지 않았을 때 자국이 입는 손실에 더욱 신경을 쓸 밖에 없다”며 “한 두 나라도 아니고 수십 개국이 감산 합의를 했을 때 제대로 이행될 가능성이 더욱 낮기 때문에 아예 감산시도 조차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호 전기전력 전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