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는 애플 그 자체다. 애플이 잡스였고 잡스가 애플이었다. 2011년 10월 그의 죽음은 IT산업과 기업에 물음을 던졌다. ‘상징적 리더를 잃은 애플이 과연 잡스 사후에도 위대한 기업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후계자 팀 쿡을 비롯한 애플 임원 대다수가 잡스 없이도 애플이 혁신을 거듭하는 기업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고자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이제 애플은 잡스가 추구했던 혁신DNA를 잃어버렸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애플은 순항하고 있다. 매출에서는 잡스를 능가했으며 효율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애플은 이대로 괜찮은 것인지 의문이다. 이 책은 잡스의 임기 마지막 3년과 쿡 취임 초반을 다룬 기록이다. 애플이 직면한 변화와 도전을 살펴보며 애플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모든 이슈를 짚고 있다. 잡스 없이 ‘혁신’은 가능한지, 쿡은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애플의 수장인 쿡의 이력을 꼼꼼히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잡스 이후 애플 혁신의 가장 중요한 열쇠이기 때문이다. 쿡의 성격, 학창시절, 업무 스타일을 비롯해 직업 경력상 특징과 다양한 에피소드가 소개된다. 그가 물 샐 틈 없는 관리의 대가이며, 꼼꼼하고 차분한 완벽주의자이자 실리주의자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기업 성적표 면에서는 합격점이다. 쿡은 최근 몇 년 애플 매출 신장에 뚜렷한 기여를 했다. 잡스식 오만함을 버리고 중국이라는 거대시장에 친화적으로 접근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저자는 애플이 애플다움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한다. 애플이 위대한 것은 혁신의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애플의 존재 이유와 미래 비전인 ‘혁신’ 측면에서는 의구심을 제기한다. 쿡 체제 이래 수년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차세대 혁신 제품은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TV도 아니었고, 시계도 아니었다.
심지어 애플은 테슬라 인수에 관심을 보이며 혁신을 ‘구매’하려 한다. 저자는 2013년 한 IT콘퍼런스 대담 장면을 상세히 소개하며 쿡이 혁신을 그저 ‘상투적인 말’로 대신하려는 게 아닌지 지적한다. 혁신 기술로서 야심차게 내놓은 시리와 애플맵을 둘러싼 소동을 통해 쿡 체제의 삐걱거림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저자는 애플의 전·현직 임원은 물론 거래업체와 애플 감시자 등 200여명 관계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애플의 모든 것을 조명한다. 이를 통해 애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촘촘한 취재와 예리한 통찰을 책에 풍부하게 담아 갖은 풍문과 쏟아지는 특종기사가 보여주지 못하는 내실 있는 보고서를 이끌어냈다. 쿡의 리더십이 잡스에게 충성했던 임원에게 미친 영향을 포함해 신제품 개발 과정, 애플과 월가의 관계부터 정부·경쟁업체·공급업체·언론·소비자 관계까지 두루 망라해 탐사한다. 신랄하지만 공정한 시선으로, 상징적 기업이 혁신적 리더를 잃었을 때 직면하는 위기와 기회가 어떤 것인지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혁신이 멈출 때 기업도 멈춘다. 책은 애플 사례를 통해 경영과 혁신, 그리고 글로벌 경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시도한다. 새로운 혁신을 요구받고 있는 한국 기업에도 강한 시사점을 던진다.
유카리 이와타니 케인 지음. 이민아 옮김. 알마 펴냄. 2만2000원.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