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는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의식주와 함께 인간 생활 유지를 위한 네 번째 필수요소로 꼽히기도 한다. 에너지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다. 현대 에너지 중 활용도가 가장 높은 전력은 물리적 보관이 불가능한 전기 특성 때문에 필요할 때 공급해주는 실시간 수급에 많은 투자와 노력을 쏟을 정도다. 이런 전력 수급에 정보통신기술(ICT)에 기반한 각종 데이터 활용이 늘고 있다. 스마트그리드, 신재생에너지발전,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수많은 분야에서 전력 데이터를 모아 똑똑한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고 있다.
2011년 9월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순환정전 당시 우리나라 전력수급과 에너지 절약 방법은 지금보다 훨씬 단순했다. 발전소는 늘어나는 수요에 맞춰 전력공급량을 늘리고 수요가 떨어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수요가 떨어지는 대표적 방법은 소비자 절전 행동 뿐이었다. 공장 가동 중단 시간을 미리 예고하고, 예정대로 전기사용을 줄이면 아낀 전기요금에다 장려금까지 줄 정도였다. 여름과 겨울만 되면 TV와 라디오에서 에어컨이나 전열기 사용을 자제하고 전기를 아끼자는 캠페인이 쉴 새 없이 등장했다.
이런 캠페인에 의존한 절전은 한계가 있다. 당시 공공기관과 대형 시설물은 정부 규제로 냉난방 온도 제한 등이 있었지만, 별다른 인센티브도 없이 일반 가정과 상가 참여를 독려하기 어려웠다.
반면에 일부 대형 공장은 한국전력, 전력거래소와 계약해 절전에 대한 인센티브를 받았다. 전력수요가 급증하면 제철, 시멘트 등 전력 사용량이 많은 제조업장이 시설을 정지시켜 사용량을 줄이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제도는 일부 사업장에 불과했고 절전에 따른 보상비도 과도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형평성 문제를 야기했다.
한전과 전력거래소는 필요 시 보다 안정적으로 약속된 절전이 가능하도록 계약 대상을 늘리고 싶었지만 문제는 그 수가 늘어날수록 관리가 어려워지는 점이다. 대형사업자 이외에 지시에 따라 비용을 받고 절전을 할 수 있는 고객이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실제 절전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 등 관련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다.
지금은 ICT와 데이터가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다. 수많은 상가와 건물, 최근엔 다세대 주택도 전력시장과 연계돼 필요 시 절전을 하고 이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 전력계통 시스템과 각 고객의 수용가 사이에 전력사용량이 ICT를 통해 양방향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으면서 이 같은 일이 가능해졌다.
지난해 11월 개설된 수요자원 거래시장에선 1300여 개소 전기사용자들이 LNG 발전소 5기를 대체하는 절전행동으로 수익 사업화하고 있다. 절전이라는 가상 발전소가 만들어낸 데이터를 시장에서 거래하는 셈이다.
과거와 달리 다양한 고객을 수요자원 시장에 참여시킬 수 있었던 배경엔 고객 전력사용 패턴과 시설현황 등 각종 데이터를 수집 분석한 작업이 큰 역할을 했다. 절전고객을 모으는 수요관리사업자는 컨설팅을 전개, 각 고객별 최적 절전 방법을 제안해 절전효율을 높인다.
공장의 경우 재고관리를 통해 조업일정을 조정해 전력사용량을 줄이는 방법을 활용한다. 그동안 재고와 상관없이 공정별로 일정한 제품 생산을 해왔다면, 재고량에 따라 설비를 탄력적으로 운영해 절전하는 식이다. 재고관리로 수요시장에 참여한 한 제철 공장은 LED 조명 교체와 전동기 인버터 부착 등으로 100억원이 넘었던 한 달 전기요금을 95억원으로 줄이기도 했다.
빌딩, 아파트 등 사람들이 이용하는 건물에는 냉난방 온도 조절 방법이 많이 사용된다. 사람들의 전력사용 패턴을 분석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에어컨과 히터 등에 출력을 조절하는 센서를 부착해 에너지 효율을 높인다. 전력거래소에서 절전지시가 내려오면 빌딩에너지관리시스템 등을 활용해 에어컨과 히터 출력을 자동으로 조절, 절전을 할 수 있다. 건물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최대 전력에 제한을 두어 일정 수준 이상 전력을 사용하면 자동으로 일부 설비 전원을 끄는 방법도 많이 사용된다.
수요자원 거래시장은 계속해서 참여자들이 늘고 있다. 고객 전력사용 패턴을 분석하고 모집하는 수요관리사업자도 추가로 참여하고 있다. 모집 대상도 상가, 아파트, 학교에서 보다 다양한 소규모 전기사용자로 넓어지고 있다.
해외에서도 미국을 중심으로 시장이 커지고 있다. 2013년 1조7000억원 규모였던 시장은 10년 뒤인 2023년 11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참여 고객이 다양화되면서 ICT 도입도 활발해지고 있다. 고객 에너지 관리를 위해 클라우드 컴퓨팅 기반 SW 운영, 별도 인프라 구축 없이 수요자원 정보를 제공하는가 하면, 설비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전력 구매와 판매까지 가능하게 하고 있다.
정부 역시 참여고객 다양화와 사업자역량 강화 등을 위해 시장참여 문턱을 낮추고 에너지저장장치(ESS), 에너지관리시스템(EMS) 등 에너지신산업을 활용한 고객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EU 국가별 수요자원 시장 현황(자료: 산업통상자원부)>
<수요자원거래시장 업종별 점유율(자료: 산업통상자원부)>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