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경]비울수록 채워진다

어느 조직이든 내부에서 가장 힘이 있는 부서는 인사와 예산을 맡는 곳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인사를 맡은 행정자치부와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는 부처 중에서도 ‘힘 있는 조직’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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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힘은 예산에서 나온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돈이 없으면 추진이 어렵기 때문이다. 매년 예산철이면 각 부처 담당자는 기재부 예산실 직원을 설득하기 위해 진땀을 흘린다. 예산실 직원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지만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에서 이들을 맞는다.

이런 기재부에 ‘힘 있는’ 수장이 오면 능력은 배가된다. 최경환 부총리 임기 동안 기재부 출신 인사 약진이 두드러졌다. 방문규 전 기재부 2차관은 보건복지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겼고, 주형환 기재부 1차관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 내정됐다. 지난달 국토교통부 수장이 된 강호인 장관도 기재부 출신이다.

장·차관 뿐만이 아니다. 각 부처와 산하기관 책임자급으로 이미 많은 기재부 출신 인사가 포진했다. 한 공무원은 “기재부 출신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요직으로 가는 현상은 이미 만연했다”고 말했다. 기재부가 한 손에 예산을, 다른 한 손에 각 부처 고위직을 쥐고 있는 셈이다. 기재부로서는 좋은 일이지만 다른 부처에는 위화감이 생기고 사기가 저하된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내정자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경기에 활력을 불어 넣는 것이 급선무지만 기재부 힘을 스스로 놓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특정 부처 비대화는 정부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 요르단강 인근의 사해는 염분이 다른 해수의 5배에 달하는 죽은 바다가 됐다. 물이 받아들이기만 하고 흘려보내지 않기 때문이다.

‘기이위인기유유(旣以爲人己愈有) 기이여인기유다(旣以與人己愈多)’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남을 위해 베품으로 내 것이 생겨나고 남과 나눔으로 내 것을 많아진다. ‘비울수록 채워진다’는 옛 성현의 말씀을 되새겼으면 한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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