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한민국의 가장 큰 화두는 일자리 문제로 보인다. 이는 경제를 넘어 국가·사회적 이슈로까지 떠오르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잡셰어링, 임금피크제, 공공근로 확대 등 다양한 대안을 내놓고 있지만 근본적 해법이기에는 한계가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과거에 비해 경제규모가 월등히 커진 우리 사회가 왜 충분한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인가.
일각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이 우리의 노동력을 빠르게 대체하며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 논리다. 일례로 공장 생산자동화에 주로 활용되던 로봇기술이 점차 가사, 교육, 재활 등 다양한 서비스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올초 보스턴컨설팅그룹은 로봇기술로 인해 10년 후 우리나라 노동비용이 세계 평균 16%를 넘어 33%까지 절감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 연구개발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온 필자의 관점에서는 과학기술이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기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논리에 동의하기 어렵다. 역사적으로 과학기술 혁신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기존 산업과 일자리를 대체했지만 더 큰 새로운 고용 기회를 창출해 왔다. 19세기 방직기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일자리를 잃게 된 영국 근로자들은 ‘기계가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며 기계 확산을 저지하자는 러다이트(Luddite) 운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방직기계와 관련 기술 보급은 결과적으로 면직산업을 크게 성장시키며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공장 기계화 확산은 더 많은 철과 석탄 수요를 창출했고, 이는 제철·제련산업 성장으로 이어졌다. 철과 석탄 운송 필요성은 철도 등장을 앞당기는 결정적 계기가 돼 철로 건설·유지·보수를 위한 또 다른 일자리가 계속해서 만들어졌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혁신 과정에서 일자리 소멸과 생성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일자리 창출에 대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2013년 직업사전에 등재된 직업 종류가 미국 3만654개, 일본 1만7209개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1만1655개로 미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결국 미국은 다양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기반으로 우리에게는 없는 2만개 직업에서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우리도 새로운 혁신을 통해 기존 산업을 고부가가치화하고, 신산업과 서비스업 창조를 통해 새로운 직업군을 만들어 나가야한다.
전통적 농업이 생명과학과 ICT가 접목된 미래형 농산업으로 진화한다면 농산물 생육정보를 분석하는 수많은 데이터분석 전문가들이 필요해진다. 곧 다가올 무인자동차 시대 무인 인프라 구축·관리를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수요가 발생할 것이다. 인류의 마지막 미지 영역으로 남아있는 뇌의 신비가 조금 더 밝혀진다면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심리상담, 교육, 뇌질환 진단·치료 등의 직업군이 등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기술 혁신이 일자리 창출과 보다 효율적으로 연계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먼저 과학기술 R&D와 인재양성이 밀접하게 접목돼야 한다. 결국 일자리를 만드는 주체는 인재이기 때문이다. R&D 기반의 다양한 융합교육체계를 구축해 신기술 개발과 인재양성이 동시에 이뤄지는 구조를 만들어 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대학 중심의 교육체계를 넘어 대학과 연구기관 그리고 기업 등이 연계하는 유연하고 다양한 교육과정과 커리큘럼 확충이 필요하다. 둘째는 신기술 기반의 고용 창출형 창업을 더욱 장려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기존 기업의 사업 확대를 통한 일자리 늘리기와 활발한 창업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기술집약형 사회적 기업 및 협동조합 등의 활성화도 일자리 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미래 시장을 포착하고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역동적 창업 생태계 조성은 미래 직종 창출의 화수분 역할을 할 것이다.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영국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난지 200여년 만에 지금 우리사회는 기술진보가 가져올 일자리 축소를 또다시 두려워하고 있다. 결국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위협이 아닌 기회였음을 역사가 증명해준 것처럼 다시 한번 과학기술 혁신을 통해 일자리의 양적 그리고 질적 고도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과학자들도 본인의 연구성과가 미래에 어떤 새로운 일자리을 만들어낼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또 우리 사회도 이러한 시각에서 과학기술계를 믿고 적극 지원해야 한다. 기술 혁신을 통한 새로운 직업의 탄생이 창업과 고용으로 이어지는 사회가 바로 우리 정부와 기업 그리고 국민이 만들고 싶어 하는 창조경제의 본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병권 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 bglee@kis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