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테크노밸리 창업 생태계는 살아있을까. 경기콘텐츠진흥원이 운영하는 경기문화창조허브와 경기콘텐츠코리아랩을 찾았다. 건물 한개동에 층별로 역할을 구분해 생태계 사슬을 만들었다.
이곳에는 창업 아이디어 발굴부터 창업에 필요한 모든 궁금증을 풀어주는 문화창업 플래너가 상시 대기한다. 교육, 컨설팅, 창업자금과 공간을 지원한다. 창업 후 투자유치와 판로 확보를 위한 IR과 마케팅도 도와준다. 스타트업 탄생 과정을 따라가 보았다.
처음 문을 연 곳은 7층에 마련된 경기콘텐츠코리아랩 창작자실이다. 창업에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한 창작공간과 아이디어·사업계획을 발표할 피칭장 및 교육장으로 구성됐다. 다음날 행사를 위해 카메라를 설치하고 손보는 이들만 바쁘게 움직인다. 젊은이들은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6층으로 내려갔다. 창업을 준비하는 공간이다. 7층에 비하면 활기가 넘친다. 13개 공간에 창업팀이 입주했다. 창업 교육을 받고 사업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긴 사람들이다. 6개 팀이 사업자 등록을 마쳤다.
낭낭공방은 ‘셀프 디자인’이라는 비즈 모델을 가지고 2년 전에 바로 이 곳에서 창업한 벤처다. 셀프 디자인은 머그컵·텀블러·컵받침 등 일상용품에 소비자가 직접 그리거나 도안해 보내온 디자인을 프린터해준다는 아이디어를 사업화한 것이다. 요즘엔 타일에 그림이나 사진을 넣은 타일액자가 인기다.
8평 남짓한 사무실은 그동안 제작한 작품과 재료, 장비 등으로 가득했다. 그 속에서 작업에 몰두 중인 정언랑 대표를 만났다. 그는 “지난 2년간 소비자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면서 규모를 키우고 있지만 아직도 8층 사무실에 입주하기에는 부족한 모양”이라며 “경쟁력을 더 키워 8층 스타트업 사무실로 올라가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8층은 경쟁률이 10대 1에서 15대 1에 달해 웬만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서는 입주할 수 없는 곳”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바로 옆 플레이플랜 사무실에는 아직 앳돼 보이는 젊은 여성이 블록으로 만든 건축물 모형을 살피고 있었다. 졸업 3년 만에 이곳에서 3인팀으로 창업한 이미지 사장이다.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설계사무실에 1년 정도 근무했어요. 7층에서 3D프린팅 교육을 받았죠. 지난 7월 함께 공부하던 동료 두 명과 의기투합해 창업했어요.”
이 사장은 건축과 3D 프린팅을 융합한 비즈니스 모델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청년이다. 건축물 모형을 좀 더 쉽고 경제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블록화 했다. 레고처럼 생긴 블록은 3D프린터로 찍어냈다. 기존 모형 재료는 한번 사용하면 그만이지만 이 블록은 언제든 재활용이 가능하다. 8월 말에는 창조경제혁신페스티벌에 출품, 데모데이 행사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이 사장은 “설계사무소를 중심으로 B2B 판매를 준비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다”며 “3D프린팅을 배우러 왔다가 사업 아이템과 함께할 동료까지 얻는 행운을 잡았다”며 환하게 웃었다.
8층에는 과연 어떤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을지 궁금했다. 8층은 창업 3년 미만 스타트업을 위한 창업성장 발전소다. 이곳에서는 제품 상용화와 투자유치 활동이 주로 이루어진다. 본격적인 비즈니스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총 22개 사무실이 준비돼 있는데 지금은 21개사가 입주해 있다. 6개월마다 사업계획을 받아 상용화 진척도와 비즈니스 모델 등을 평가한다.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바로 퇴출되기 때문에 생존경쟁이 치열하다. 바꿔 말하면 6개월마다 이곳에 입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에어팩토리는 이곳에 입주한 지 1년 만에 월 매출 1억원을 달성한 ‘공유경제 플랫폼’ 기업이다. 지난해 7월 ‘청년창업 스마트 2030’ 프로그램에 예비창업자로 참여했던 길창수 사장이 경기문화창조허브에서 창업교육과 멘토링에서부터 사업준비와 기획·개발 지원을 받아 창업했다. 창업자금 3100만원도 받았다.
사업 아이템은 고급 수입차를 웨딩카로 이용할 수 있게 차주와 신혼부부를 연결해 주는 ‘에어래빗’ 서비스다. 차주가 직접 운전까지 해주면서 지금까지 2400쌍이 이용했따. 길 사장은 “이 플랫폼을 오픈한지 3일 만에 1200만원 매출을 올리면서 성공을 예감했다”며 “신규 오픈 식당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이 안정되면서 투자유치에도 성공했다. 길 사장은 “대기업에 있던 지인들이 속속 합류하고 있다”며 “‘재밌게 일하자’ ‘3년내 부자되자’가 비전”이라고 소개했다.
9층은 1인 예비창업자를 위한 스마트오피스다. 7층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발굴한 창작자가 1인 창업을 준비하는 공간이다. 좌석과 칸막이 공간을 포함해 총 143석을 이용할 수 있는 이곳은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새벽 6시에 오픈하는데 30분 만에 완료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경기문화창조허브 회원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예약을 하고 들어온 회원은 이곳을 하루 동안 사무실처럼 이용할 수 있다. 우편물을 받아 볼 수 있도록 버추얼 오피스도 제공한다. 스케줄을 맞추기에 따라 창업교육과 멘토링, 창업 컨설팅도 받을 수 있다. 창업과 관련해 궁금한 사항은 이곳에 상시 대기 중인 8명의 문화창업 플래너가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곳을 이용하는 예비창업자들은 대부분 혼자다. 그래서인지 소근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묵묵히 앞으로 펼쳐나갈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듯 보인다. 작업공간 앞에 놓인 칠판만이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을 미루어 짐작케 해줄 뿐이었다.
‘Networking Wall’이라고 적힌 칠판에는 예비창업자 명함이 여기 저기 붙어 있다. 멘토 또는 함께 하고자 하는 또다른 예비창업자로 보이는 명함과 이름도 빼곡하다. 그 사이 사이로 화살표가 어지럽게 이어지고 질문과 답도 엉켜 있다.
이규원 경기콘텐츠진흥원 판교문화창조허브팀장은 “지난해 3000명이던 회원이 올해는 5000명으로 늘어 누적 회원수가 2만2000여명에 달한다”며 “겉으로는 쉬워보이지만 실제로는 창업 준비과정에서부터 조용하면서도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