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3주년 특집 Let`s SEE Emerging] 부동의 이머징 시장 '중동'을 주목하라

1970~1980년대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한창 써내려가던 시기, 중동은 우리나라 무역수지를 흑자로 돌려세우는 결정적 선물을 안겨줬다. 건설산업을 중심으로 우리 기업 중동 진출이 줄을 이으면서 ‘기회의 땅’으로 떠올랐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겐 중동 붐에 대한 추억이 남아있다. 최근 국제유가 하락과 연이은 대규모 프로젝트 취소로 잠시 주춤하는 모습이지만 오일머니에서 시작되는 부와 급격한 산업화는 여전히 매력 있는 이머징 시장 모습 그대로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제2의 중동 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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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피크 외교와 제2 중동 붐

“제2 중동 붐 효과는 얼마나 클까?”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과 경제사절단 중동 순방 이후 기대감은 한껏 고조됐다. 이때 대통령 순방은 지금까지 중동국가와 진행해왔던 교류 내용과 접근법이 달랐다. 우리나라와 중동국가 간 교류는 과거 해오던 것처럼 건설산업을 중심으로 한 인프라 구축, 대규모 장치 산업 건설, 개발계획 수행 등이 주축을 이뤘다. 이 분야에 집중해 왔고 지금도 많은 기업이 관련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반면, 지난 3월 대통령 순방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건설 및 장치산업에 더해 ICT, 의료, 유통 등 새롭게 부상하는 이머징 시장 참여 가능성을 타진한 기회였다. 협력 내용도 단순히 사업 수주보다는 공동연구와 개발, 협력 사업 구상 등이 포함됐다. 이번 중동 순방을 ‘라피크(동반자) 외교’로 칭하는 이유기도 하다.

중동국가는 지속 성장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다. 지금까지는 석유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뤄왔고 국제 관계에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었지만, 곧 한계가 올 것이라는 불안감에서다. 일부 중동국가는 석유 수출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관광, 의료, 금융 등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기에 여념이 없다.

석유 성장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우려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북미 셰일가스 공습으로 시작된 에너지 가격경쟁으로 국제유가는 폭락 상태이고 이는 곧 중동국가의 재정적 압박으로 다가오고 있다. △재정수입 급감 △프로젝트 취소 사례 속출 △현지통화 가치 급락 △수입시장 위축 등은 지금 중동국가가 겪고 있는 공통된 현실이다.

탈 석유산업에서 새로운 분야 성장시장을 찾으려는 중동국가 요구와 ICT 역량을 융합형 신산업으로 새롭게 창조하려는 우리나라 노력 사이에 제2 중동 붐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 경제사절단이 중동순방에서 가능성을 본 분야는 전통 수출산업인 인프라와 함께 의료, 식품, 에너지 등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진행하는 중소형원자로인 스마트원전 공동개발과 실증 협력은 이미 잘 알려진 성과다.

쿠웨이트와는 의료와 에너지분야 이머징 시장 개척이 기대된다. 의료분야는 병원 건설, 운영과 같은 사업 이외에도 양국 의료진 연수 교류와 환자 송출 등 교류를 통한 의료서비스 선진화 및 섬 주민이 이용하는 원격의료와 같은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 수출이 가능하다.

에너지 분야에선 건물 에너지관리 및 에너지 효율화 기술, 그리고 정부가 에너지 신산업으로 육성 중인 마이크로그리드 에너지 자립마을 등이 새로운 이머징 분야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에너지 자립마을 모델은 특정 지역에 자체적 전력 생산과 수급, 분배를 모두 해결할 수 있어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지역별 전력수요는 높지만 이를 충족할 만한 전력망은 못갖춘 중동국가엔 안성맞춤이다.

◇“중동 전통 시장을 이머징 시장으로 탈바꿈하라”

대 중동 주력 수출산업이었던 건설 플랜트 분야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다. 사업발주는 줄어든 반면에 경쟁자는 많아지면서 단가 경쟁 수위는 더 높아졌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우리기업 발등에 불로 떨어졌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분야 확대다. 지금까지 건설 플랜트 수출 대부분은 단순 시공과 도급사업이었다. 지금은 설계에서부터 자재 유통·조달까지 함께 수행하는 방법이 보편화되고 있다. 최근엔 개발계획 수립 단계부터 관여해 도시 및 단지 개발 로드맵 수립과 환경평가 수행도 비즈니스 대상이 되고 있다. 단순 노동집약적 산업이었던 건설 플랜트 분야에 노하우 이전, 서비스, 컨설팅 등 지식과 기술 집약적 산업이 융합된 셈이다.

발전·석유화학 플랜트 사업에 직접 참여하는 방법도 최근 트렌드다. 건설 후 운영단계에서 수익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사업에는 투자를 통해 지분수익을 가져오는 방법이다. 건설 사업 수주 수익은 물론이고 운영단계에도 참여해 지속적 수익을 도모할 수 있다.

설비 운영단계에선 우리 IT 역량이 돋보인다. 건설은 완료됐지만 설비를 운영할 인력과 노하우 부족 문제를 IT로 해결하고 있다. 자동운전시스템 같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설비의 일반적 운전과 정비, 이상시 대처 과정 등을 시스템으로 구축해 교육이나 운영비를 절감할 수 있다.

원격 모니터링과 빅데이터 기술도 동원되고 있다. 그동안 설비 고장 시 발생했던 사전 징후는 빅데이터화해 문제점을 미리 발견하고 원격으로 설비를 제어해 예방 정비하는 방식이다. 중동처럼 거리가 먼 지역에선 설비 수리 및 유지보수를 위해 전담 직원을 파견하는 일이 줄어들어 비용절감이 가능하다. 기존 시공사업에서 IT를 융합해 새로운 서비스·비즈니스 영역을 발굴해 따내고 있다.

플랜트업계 관계자는 “단순 시공 능력만으로는 경쟁에서 이기기도 힘들고 단가인하로 수익성도 좋지 않다”며 “IT와 SW를 융합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서비스분야 솔루션을 제안해 고객사의 다양한 요구를 맞춰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소박스]저유가 시대 대비한 수출 전략 필요

요즘 중동시장을 휩싸고 있는 최대 변수는 저유가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국제유가 하락으로 다수 중동국가가 재정 위기에 직면하면서 국가 프로젝트 취소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자체적으로 재정확보를 위한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저유가 기조가 장기화하면 저렴한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문화 변화와 수입선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거세질 수 있다.

중동 소비 트렌드가 품질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저렴한 대용품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변화하면서 우리나라 제품이나 용역사업 경쟁력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더 이상 같은 분야, 같은 상품으로는 중국을 뛰어넘기 어렵게 됐다.

고부가가치 기술 개발과 신규 비즈니스 발굴이 시급하다. 또 다른 방법은 기존 수출 분야에 IT를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 기업이 이전에 진출했던 설비 사업에서 운영관리시스템 등 새로운 비즈니스를 추가 발굴하는 것이 좋은 사례다.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 대규모 프로젝트는 취소되고 있지만 반대로 낮아진 임금이나 현지통화 가치 하락은 투자 진출 기회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규모는 작지만 국가 정책적으로 필요한 부분에 중소 규모 솔루션을 제공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이번 중동순방에서 제시했던 스마트원전이나 마이크로그리드 모델이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전력과 물은 중동시장에선 재정 상황과 관계없이 진행해야 하는 필수 인프라 사업이다.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만큼 지금과 같은 저유가 상황에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제시한 스마트원전과 마이크로그리드 모델은 전력과 함께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대규모 송전망 건설 없이 분산형 전력수급이 가능해 중동시장에 안성맞춤형 솔루션이다.

이란 등 국제정세 문제로 진출하지 못했던 신흥시장 개척 노력도 필요하다. 실제로 발전공기업과 협력 중소기업은 이란 국영기업 관계자를 우리나라로 초청해 정식 교류와 협력을 타진하는 등 그동안 막혀있던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전력 기자재업계 한 관계자는 “사우디, 쿠웨이트, UAE 이외에도 이란처럼 본격적 성장을 앞둔 곳들이 다수 있다”며 “과거 단가경쟁이 아닌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로 이들 시장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3월 중동순방 주요 성과

자료: 중동순방 성과 요약(산업통상자원부)

우리나라 대 중동 및 북아프리카 수출동향(단위: 백만달러)

자료: 한국무역협회

중동 시장 최근 현황

자료:KOTRA

[창간 33주년 특집 Let`s SEE Emerging] 부동의 이머징 시장 '중동'을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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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