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필호의 실크로드 속으로] (9) 서역인들의 실크로드 ②실크로드의 주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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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일반적으로 영웅으로 표현되는 실크로드와 관련된 정복자들은 대상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잘 길들여 놓은 실크로드를 타고 다니며 잔혹하기 이를데 없는 약탈전쟁을 벌여 실크로드 교역을 초토화 시키거나 긴 세월동안 대상들의 활동을 저지시켰다. 그들은 실크로드 교역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대단히 해로운 존재들이라 하겠다.

먼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왕(Alexander the Great: BC 356 – 323)의 경우를 보면 서양 역사가들 입장에서는 알렉산더가 동방에 사는 야만인(barbarian)들을 교화시기 위해 정복전쟁을 하였다고 하지만 실질은 아무 이념도 명분도 없는 살육과 약탈과 겁탈을 위한 전쟁이었을 뿐이다. 그는 동으로 인도의 인더스 강에 까지 영토을 넓히고 중앙아시아에는 마라칸다(Maracanda: 현재의 사마르칸드) 북쪽까지 진출을 했지만 당시 마라칸다 왕이 사신으로 간 자기 부하들을 죽인데 대한 보복으로 마라칸다 지역의 모든 사람을 죽이고 모든 건축물을 파괴하는 잔혹함을 여지없이 발휘하였다.

서양의 일부 역사가들은 알렉산더 왕의 정복전쟁 후에는 오히려 실크로드 교역이 더 활성화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도시들이 파괴된 상황에서 도대체 무슨 교역이 더 활성화 되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을 뿐더러 그것이 사실이고 하여도 그런 처참한 희생 위에 교역이 활성화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알렉산더가 기원전 4세기에 아랍과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 일대를 폐허로 만든 뒤 1500년 가량 지난 후에는 한 동양인이 다시 거대한 정복전쟁을 일으켜 실크로드를 다시 초토화 시켰는데 그가 바로 징기스칸(Genghis Khan: AD 1162 – 1227)이다. 징기스칸은 동양인으로서 서양을 향해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고 네명의 그의 자식들은 자신들이 점령한 지역을 각각 나누어 다스렸으므로 그가 동서양에 끼친 영향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비교적 큰 편이다. 그의 군대는 전쟁을 수행하는 중에도 비교적 독특한 전략을 쓰거나 특이한 후방지원 체제를 구축하여 효율성을 높이기도 했으므로 오늘날에는 징기스칸 경영이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당초에 정복전쟁을 벌일 적에 어떤 특별한 이념이나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복수 혹은 패권적 야심으로 몽고 일대를 통일하고 자신들을 멸시했던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를 쳐들어가서 약탈과 학살을 일삼으며 온 중국 북부를 휘젓고 다니다가 북경에 고립된 금나라 황실의 항복을 결국 4년 만에 받아냈다.

징기스칸군이 그렇게 약 10여년을 전쟁을 하다보니 자신의 친위세력인 몽고 군사들은 약탈도 할만큼 했고 정복지에서 데려 온 남녀 노예들도 웬만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그 이상의 전쟁에 피곤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알타이 산맥과 천산산맥 이동의 지역은 거의 다 평정했던 터라 그것으로 전쟁을 끝내려고 하던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세계사를 뒤집어 놓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전쟁에 지친 몽고병사들을 쉬게 하고 싶었던 징기스칸은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 일대를 지배하고 있는 콰레즈미아(Khwarezmia) 왕국에 대상 500명에 교역물자를 가득 실은 말과 낙타 수백필을 딸려 보내 교역을 요청하였으나 그 왕국의 북부지역 총독인 사람(왕의 삼촌)이 자기 나라로 들어오는 대상들을 습격하여 물건을 빼앗고 대상들을 간첩으로 몰아 모두 죽였다. 이에 징기스칸이 콰레즈미아 왕에게 총독을 처벌해 달라고 세명의 사신을 보냈으나 왕도 사신 중 한 명을 죽이고 두명은 머리를 삭발해 돌려 보냈다.

분노한 징기스칸은 몽고군 10만을 휘몰아 단숨에 천산산맥을 넘어 콰레즈미아로 처들어가 그 총독을 사로 잡아 은을 녹인 물을 눈과 코와 귀에 부어 죽이고 이어 왕궁이 있는 사마르칸드로 쳐들어가 닥치는대로 살륙하고 파괴하여 그 일대를 모두 완전히 폐허로 만들었다. 징기스칸은 내친김에 남하하여 페르시아 일대를 정복한 후 부하들을 북으로 올려보내 현재의 우크라이나 까지 점령시킨 후 자신은 인도지역을 정복하고 돌아와 잠시 후 죽었다. 이것이 징기스칸과 그 후손들이 아시아 전 대륙과 러시아와 유럽까지 쳐들어가게 된 정복전쟁의 서막이다. 그 후 한동안 실크로드 교역은 완전히 초토화되는 일종의 실크로드 잔혹사의 시작이기도 하다.

징기스칸이 죽고 약 100여년이 지난 후에 현재의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드 남부에서 징기스칸의 후예임을 자처하고 징기스칸을 동경하는 또 하나의 정복자가 태어났다. 그가 바로 자신이 알라신의 계시를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알라의 뜻에 따라 이단자와 이교도를 징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집증적 과대망상증을 가지고 있던 티무르(Timur, Temur 혹은 Tamerlane: AD 1336? – 1405)이다. 티무르는 원래 그의 조상이 징기스칸의 모계혈통과 약간의 혈연적 연결이 있을 수도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을 것으로 역사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징기스칸의 둘째 아들의 나라 차가타이 한국 영토인 사마르칸드 남부 근처에 자리잡은 힘이 아주 미약한 부족의 부족장이었다. 티무르는 젊은 시절에 도적질로도 연명하는 등 여러 곡절을 겪었으나 결국 그 지역 일대에서 유능한 군사 지휘관으로 성장하면서 세력을 키워나갔다. 그러던 중 자기 친구가 관할하는 지역으로 쳐들어가 그를 죽이고 그 부인을 빼앗아 자기의 정부인으로 삼았는데 그 이유는 그 여자가 바로 징기스칸의 직계혈통인 공주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이를 계기로 자신을 징기스칸의 사위로 자처하고 남들에게 자기 권력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고 노력하였다.

반면 독실한 이슬람 신자인 티무르는 항상 쿠란을 공부하면서 전쟁터에서도 스승들을 모시고 다니면서 공부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따라서 지적 수준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예술도 사랑하여 정복지에 가면 일반 사람들은 모두 죽여도 예술가와 기술자는 살려둔 후 자신의 본거지인 사마르칸드로 데리고 왔다.

그러나 그의 전쟁 패턴을 보면 정상적인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잔혹함을 바탕에 깔고 있으며 정복전쟁을 벌이는 동안 그런 참혹한 장면들을 셀 수 없이 많이 보여주었다. 현재에도 이란에 큰 도시로 남아 있는 이스파한을 점령한 후에는 그곳 주민들이 티무르군 관리들의 과도한 징발과 횡포에 반발을 하여 관리 몇명을 죽이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그곳 주민 20만 명을 죽였다. 그리고 살아 남은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주기 위해 죽은 사람들의 머리를 잘라 1500개씩 모아 탑을 쌓았는데 어떤 목격자가 센 것만 해도 27개 넘었다고 한다.

티무르가 인도의 델리를 정복할 당시에는 그곳에 쳐들어가기 전에 먼저 인도군 포로 10만을 죽이고 도시를 정복한 다음에는 그곳을 완전히 초토화 시켰다. 그 당시 델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의 하나였는데 1세기가 지난 후에도 폐허인 채로 남아 있었다. 티무르는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 터어키, 인도 북부 그리고 러시아 남부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였는데 그가 정복전쟁 중 살해한 숫자는 1천 7백만 명 가량이며 당시 세계인구의 5퍼센트에 달하는 숫자라고 한다. 그러나 티무르는 현재 우즈베키스탄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와같이 정복자들이 전쟁을 벌일 때마다 실크로드 교역은 중단되고 실크로드 교역에서 수요자이며 공급자 역할을 해 오던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 지역의 수많은 주민들은 물건을 징발 당하고 가만히 앉아서 목숨을 잃거나 전쟁터로 끌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위에 열거한 세기의 정복자들은 평소에 해당 국가의 주민들이 원거리 교역을 위해 오고가던 대상들을 위해 잘 닦아놓았던 실크로드를 전쟁 수행의 통로로 활용하여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 일대를 휩쓸고 다니면서 파괴를 일삼았다.

그런 환경에서 그곳의 주민들과 대상들은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날때마다 대부분의 경우 피해자의 신분이 되어야만 했다. 이렇게 수없이 곡절을 겪으며 실크로드를 생활의 일부분으로 알고 실크로드와 더불어 살아 온 페르시아 및 중앙아시아 주민들이 실크로의 주역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을 제치고 어느 특정 국가가 실크로드가 마치 자기들의 소유물인양 행동하면서 이를 자기들의 브랜드로 삼고 있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필자소개/박필호

현재 유네스코 중앙아시아학 국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

과거 미국 뉴욕주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무형문화유산센터 법률고문을 지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외무부에서도 근무한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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