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사업화 산실로 불리는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SRI(Stanford Research Institute)에서조차 대중적인 기술사업화 성과를 꼽으라고 하면 애플 인공지능 음성서비스 시리(Siri)와 다빈치 수술용 로봇 둘 정도다. 물론 이 두 가지가 가져온 산업적 영향력과 부가가치는 어마어마하지만 실리콘밸리 중심축인 그곳에서도 기술사업화는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하나의 기술이 개발돼 기업으로 이전되고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로 시장에 선보이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난관이 존재한다.

연구기획부터 기술개발과 성과활용에 이르는 연구개발(R&D)의 가장 긍정적인 순환주기를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다. 연구자는 연구기획단계에서부터 사업화가 유망한 기술 분야를 도출하고 그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연구개발을 진행, 기술개발에 성공한다. 기업은 이렇게 개발된 유망기술을 이전 받아 유망한 사업모델을 구상하고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해 시장에 출시한다. 소비자는 새 제품과 서비스가 제공하는 가치를 최대한 즐기며 생활한다. 정책입안자는 소비자 반응을 모니터링하고 분석해 연구개발 성과평가에 반영하고 새로운 기술개발정책을 수립한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의 순환시스템 고리가 모두 연결된 사례는 많지 않고, 몇 개 고리는 단절되는 일이 흔히 발생한다.
현실 속 연구자는 기술사업화 관점보다는 개발하고 있는 기술 자체의 우수성, 첨단성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있다. 소규모 기업 대부분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필요한 기술을 핀셋처럼 꼭 집어낼 능력이 없는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기술 활용 주기에서 또 하나의 난관은 바로 개발된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이 기술을 가지고 어떤 비즈니스모델(BM)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전문가적인 시각이 없는 것이다.
연구자가 생각하는 유망기술과 이를 이용하는 기업이 생각하는 유망기술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도 문제다. 시각차로 인해 유망기술이 유망사업으로 이어지는 데 어려움이 존재한다. 서로의 요구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탓이다. 유망기술이란 이 기술로 인해 생산된 제품이나 서비스가 시장성을 가지고 있는지, 생산에 필요한 기술력은 충분한지, 기업이 경쟁상황이나 투입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 등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이러한 유망기술 판단도, 유망기술이 유망사업 아이템인지 아닌지 판단도 모두 단순한 산술적 계산이나 기계적인 툴 사용만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바로 BM이다. 이를 위해 우선 제안된 기술이 소비자에게 궁극적으로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지 정의해야 한다.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치가 존재한다면 이 기술은 비즈니스로 발전이 가능할 것이며 이후에는 그 가치를 구현할 방법과 기업에 어느 정도 수익을 줄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서 사업화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즉 소비자에게는 새로운 가치를, 기업에는 새로운 수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효과적인 기술사업화를 위해서는 사업화 가능한 훌륭한 BM을 수립해야 한다. 이는 BM에 적용할 수 있는 유망기술 발굴에서 시작된다. 유망기술 발굴은 엑셀파일 돌리듯 자동적인 프로그램으로 걸러지는 것이 아니다. 기술을 이해하고 사업화 마인드를 갖춘 전문가가 투입돼 기술 하나하나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기초·원천 분야를 포함해 다양한 R&D 사업을 추진하는 미래창조과학부에서는 매년 3000건 이상의 새로운 연구성과를 배출한다. 이들 연구성과의 시장성과 기술성을 분석해 유망 기술을 발굴하고 이 기술의 수요기업을 찾아내 기술이전을 하거나 창업을 유도하는 일은 보다 체계적이고 고도화된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술과 사업과 시장을 동시에 볼 줄 아는 진정한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 전 방위적 시각으로 시장이 요구하는 유망기술을 발굴하고 BM을 구축함으로써 기술에 가치와 쓰임새를 부여하는 일이 그들의 몫이다.
강훈 연구성과실용화진흥원장 hkang@compa,re.kr